제 3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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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노경식에 관한 글들입니다.
 
 
 
黃土길의 소 달구지 ---- 차범석
 
‘머 리 말’ (노경식희곡집 제1권)

黃土길의 소 달구지----

차 범 석 (극작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극작가가 극작가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게 어설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연극계나 문학계 전체를 휘둘러봐야 극작가의 수는 고작 백여 명 안팎의 소수민족이고 보면 끝에서 끝이 보이고 앉아서 천리를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극작가로서의 자질이나 문학적인 이념, 그리고 연극 현장에의 기여도가 있다고 인정되는 작가를 꼽자면, 그 백여 명 중에서도 또 다른 소수민족으로 쫓겨나가야 할 판이다. 어느 문학단체에서 발표한 통계숫자에 의할 것 같으면 회원으로 등록된 문학인이 7천 명이라고 들었다. 거기다가 지역사회에서 묻혀 있거나 취미삼아 글 쓰는 사람까지 합치면 1만 명은 족히 되리라. 그 가운데서 극작가는 고작 백 명 남짓이라니 을씨년스럽다기보다는 무기력하고 허전한 느낌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극작가는 배출되고, 그들이 써낸 희곡은 무대에 올려져서 한국연극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 작은 숫자가 오히려 대견스럽고 당차고 자랑스럽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서 나름대로의 대표작을 써냈고, 그것이 희곡문학과 연극예술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받는 극작가가 적지않은 사실에서 나는 새삼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극작가 노경식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데는 한 치의 주저도 의구심도 아니느낀다.
나는 꽤 오래 전에 어느 글에서 노경식에 관한 인상을 말한 적이 있다. 17, 8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그 글에서 나는 극작가 노경식을, ‘황톳길의 소 달구지----’로써 비유한 적이 있다. 황톳길은 고속도로에다가, 그리고 소 달구지는 고급 승용차에다 대비시킨 수사적인 표현이었다.

“극작가 노경식을 만나면 시골 황톳길을 연상케 한다. 환하게 트인 밝은 표정에서부터 약간 구부정한 등언저리에서 두 다리로 흘러내리는 굵직한 거체에다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항상 그대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가는 모습은 매끄러운 고속도를 쾌적하게 질주하는 최신형 차는 아니다. 노면에 요철이 남아있고, 어쩌다가 버스나 츄(트)럭이 흙먼지를 날리고 가는 황톳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소 달구지의 모습이다. 전신에 희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소 달구지의 을씨년스럽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모습이다.----”

영악하지도 않고 날렵하지도 않고, 화사하지도 않지만 말없이 갈길을 가는 황톳길의 풍경에서, 나는 극작가 노경식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린 것이다. 나는 노경식의 다소는 촌티 나고 어눌해 보이면서 그 밑바닥에 흘러내리는 끈끈하고도 침착성이 강한 외모가 바로 그의 많은 희곡 가운데 그대로 응고체로 남아있기에, 작가의 인간성과 작품세계가 결코 둘이 될 수 없다는 표징을 발견할 수가 있어 더욱 신뢰성이 간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등용문을 통해 등단한 이래, 노경식 극작가가 파고들어간 길은 오롯이 외길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적’이라는 바탕에다 한국민족의 역사현장과 생활감정과 애환을 교직시키려는 선명한 나침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왜 희곡을 쓰는가라는 물음에 노경식만큼 선명한 답을 내놓는 극작가도 그렇게 흔하지가 않다. 손끝 장난이나 시대에 편승하는 현학주의적인 유행병은 애시당초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러기에 노경식은 초기의 <달집> <소작지> 등에서 보여준 토속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민족의 불행과 역경에서 오는 애환을 즐겨 써나가더니만, <징비록> <흑하> <井邑詞> <불타는 여울>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 <千年의 바람> 등은 우리 민족의 역사상황과 그 원천적인 뿌리찾기에까지 도전함으로써, 이미 30여 편이 넘는 창작희곡을 탄생시킨 점에서도 쉽게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없는 것은 그의 역사극들은 풍부한 자료 섭렵에다가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학술적 접근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건조하고 연극적인 구도에 미급했던 예도 더러 있었으나, 극작가가 역사적인 현실을 단순히 모사나 재현이 아닌 새로운 역사해석으로까지 승화시키려는 작가정신에서 나는 늘 선망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깔끔하고 단순한 재주보다는 굵직하고 진솔한 작가의식이 바로 오늘날의 극작가 노경식을 살찌우게 하였으리라고 믿는 바이다.
앞으로의 새 창작품에 더욱 많은 기대를 바라마지 않으며, 노경식 및 그 가족에 대한 건강과 축복과 영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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