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식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
임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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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글- ‘노경식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희곡집 1권)
또 하나의 멋진 야심작을 위하여
임 영 웅 (연출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극작가 노경식씨가 희곡집을 낸다고 한다. 새삼 생각해 보니 1965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1971년에는 장막희곡 <달집>으로 화려하게 국립극단에서 데뷔한 그가 이제야 처음으로 작품집(전5권)을 출판하게 된다는 것이 어딘지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겸손한 그의 품성을 아는 나로서는 우선 충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먼저 드린다. 극작가와 연출가의 만남에는 여러 경우가 있는데, 대개는 사람을 먼저 알고 작품을 함께하게 되는 것이 보통수순이다. 그런 점에서 노경식씨와 나의 만남은 좀 특이하다. 일찍이 아깝게 우리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간 박영희라는 희곡 번역가가 있었다. 71년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찾아와서 내가 연출했으면 좋을 것 같은 창작희곡이 있다고 <달집>을 추천했다. 원고를 보자고 했더니 당시 여석기 선생님이 간행하던 「연극평론」(제4호)에 실릴 예정이어서 지금은 인쇄소에 있다고 말한다. 급한 마음에 교정쇄라도 보자고 했더니 당장 작가 본인에게 연락을 해서 정말 교정쇄를 가져왔다. 작가의 고향인 남원 가까운 산골 마을을 무대로, 일제치하, 8.15해방, 6.25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굳건히 살아온 한 시골여인의 슬픈 삶이, 향토색 짙은 호남 사투리로 끈끈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걸쭉하고 맛깔스러운 전라도 대사와 한국적인 서정성이 물씬 풍겨나오는 그야말로 감동을 주는 역작이었다. 나는 그 즉시 <달집>을 국립극장에 추천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나의 연출로 국립극단 제 61회 공연으로 상연하게 되었다. 때에 백성희 선생이 주인공 성간난 역을 열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노경식씨는 <달집>으로 그 해 백상예술대상의 희곡상을 수상했다. 극작가 노경식씨와 나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뒤 나는 노경식씨의 작품을 세 편 더 연출하게 되었다. <흑하>(1978년/국립극단), <하늘만큼 먼나라>(1985년/극단 산울림), <침묵의 바다>(1987년/국립극단) 등이 그것이다. 따지고 보니 우리네 순수창작극 네 편이라는 숫자는 내 연극 인생에서 같은 한 작가의 작품을 연출한 최다기록이 된 셈이다. 참으로 보통인연이 아니다. 1985년은 온 세상이 남북이산가족찾기 운동으로 들끓던 시기였다. 그의 작품으로 유일하게, 우리 극단에서 공연한 <하늘만큼 먼 나라>는 분단조국의 비극적 현실을 다룬 노경식씨의 사회성 짙은 가정극이다. 이 작품은 그 해 대한민국연극제(서울연극제의 전신) 참가작으로 극단 산울림에게 대상과 남녀 최우수 연기상(조명남, 백성희) 그리고 연출상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도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어쩐 일인지 유독 작가에게만은 희곡상이 돌아가지 않은 점이다. 우리들 마음대로 결정하는 일도 아니고 대상을 받았으니까 그 안에 다 포함된 것이라고들 말은 했으나, 못내 아쉽고 송구스러운(?) 추억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우리가 함께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남의 의견을 성실하게 듣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한결같은 극작가 노경식씨!-- 그런 그도 인제는 어느 덧 인생 칠십 고희를 바라보는 원숙한 연륜에 이르렀다. 굳이 바라건대 피차 건강한 가운데서, 그의 또 하나의 멋진 야심작을 내가 연출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는 노경식씨의 희곡작품집 출간을 거듭거듭 축하하면서, 반드시 우리들의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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