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들과 떠난 그해 ... |
한상철- (03년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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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방- ('문화예술' 2003년 8월)
'아름다운 이들과 떠난 그해 여름'
글- 한상철 (연극평론가)
1980년대 초반 노경식 씨와 나는 여석기 선생님을 모시고 여름방학 동안 유명 휴양지나 사찰을 찾아 더위를 피하는 여행을 했었다. 사진에 보이는 구 례 지리산 화엄사 방문은 그 여름 여행의 하나였다. 약 5, 6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두서너 곳을 도는 이 여름 여행에서 그해에는 서울서는 가보기 쉽지 않은 남해도 상주해수욕장과 구례 지리산, 남원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 이었다. 상주해수욕장에 간 것은 일행 중 바다를 특별히 좋아한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름 여행의 상징인 바다를 빠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수에 몸을 담가보고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텐트 속에서 쉬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물 각황전이나 그 뒤편에 있는 4사자석탑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얼마 안 돼 사람들이 몰려들어 계곡과 맑은물이 일품인 뱀사골을 악취가 풍기는,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남원이 고향인 노경식 씨 말고는 초행길인 우리에게 그곳은 춘향과 이도령의 로맨스가 꽃피는 향기 그윽한 고장은 아니었지만 그걸 대신해 준 것이 남원 명물 숙회였다. 평생 서울서 자란 나에겐 언젠가 대학 시절 신설동 형제추탕집에서 먹은 추어탕이 전부였는데, 이 숙회는 보기와 맛이 생전 처음이었다. 그후 서울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보았지만 옛날 남원에서 먹은 맛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사람의 기억 중 가장 오래가는 것이 미각이라 했다. 아마도 그 숙회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 중에도 여 선생님과의 여름 여행은 ‘그런 시절이 다시 왔으면…’하고 반추되는 여름철의 회상이다. 일상사로부터 벗어나고 은사, 선배라는 공적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한 가족처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란 이 같은 여름 여행 이상 가는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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