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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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노경식에 관한 글들입니다.
 
 
 
'아, 이거야 정말--'도 덧없는 ... 유민영- (02년 3월호)
 
이야기가 있는 방 ('문화예술' 2002년 3월)

'아, 이거야 정말----'도 덧없는 세월 속에

글_ 유 민 영 (단국대 대중문화대학원장)

이 사진을 보는 순간 필자를 아는 분이나 그렇지 못한 분이나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라는 것을 느낄 것 같다.
왜냐하면 존경받는 원로 연극인 이해랑 선생 옆 사람들의 행색이 참으로 묘하기 때문이다. 즉 이발도 제대로 못해서 장발이 귀를 덮고 빛 바랜 잠바에 숟가락과 종이컵까지 들고 멍청히 서 있는 필자의 모습이야말로 가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IMF 사태가 터진 직후 사직공원 한 모퉁이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노숙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필자를 아는 분들은 그렇게는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가 사업을 한 적도 없고 더구나 옆에 저명한 원로 연출가 이해랑 선생과 중견작가 노경식 씨가 서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 사진은 지금부터 17년 전인 1985년 9월 속리산 골짜기에서 찍힌 것이다. 마침 예총(당시 회장 조경희)의 정기 심포지엄이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열렸고 필자가 주제 발표자로 나섰었다. 과거 예총회장을 다섯 번이나 지낸 바 있는 이해랑 예술원 회장이 동행을 하자, 평소 그분을 모시던 술꾼들인 권오일(연출가), 이태주(연극평론가), 김동훈(실험극장 대표), 노경식(극작가), 유용환(기획자)씨 등이 따라나서게 되었다.
심포지엄을 마치는 둥 마는 둥 우리 일당은 따로 떨어져서 송이버섯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속리산은 송이버섯으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마침 송이 철이기도 했다. 평소 요리에 취미가 있고 일가견이 있는 권오일 씨가 늘상 싣고 다니는 버너와 철판 등을 꺼내고 송이와 소고기를 듬뿍 산 우리들은 커다란 고목 밑에 모여 굽고 지지고 하면서 한바탕 판을 벌이고 있었다.
멤버 좋고 음식 좋고 풍경 좋고 해서 모두 다 질펀하게 퍼마시기 시작했다. 여남은 병의 소주와 십여 병의 맥주는 주당들의 호기를 더욱 북돋웠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이해랑 선생은 거나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누가 청하지 않아도 그의 18번〈이거야 정말 만나봐야지…〉를 목청껏 뽑아서 좌중을 들뜨게 만들곤 했다.
그때도 바로 그런 찰나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청명하던 9월의 가을 하늘에 갑자기 산 너머에서 먹구름이 덮이더니 소낙비가 후두두둑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대로 버텨보려 했으나 워낙 많이 쏟아졌기 때문에 음식 챙길 사이도 없이 황급히 나무기둥 밑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먹던 숟가락을 든 채, 그리고 이해랑 선생은 18번을 부르다 말고 피신해서 ‘에이 젠장…’ 하는 표정을, 노경식 씨는 어이없다는 듯이 서 있었는데, 사진작가 지망생 이태주 씨가 그런 꼴불견을 놓칠 리 만무했다. 찰칵! 이태주 씨에게 잡힌 기막힌 광경이다.
그런데 이해랑 선생은 3년 뒤에, 그리고 김동훈 대표는 11년 뒤에 저쪽 동네로 이사 가고 우리만 남아서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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