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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노경식에 관한 글들입니다.
 
 
 
'권력 : 천년을 윤회하는 역사' 이강백
 
권력 : 천년을 윤회하는 역사

- (대산문학상 심사평- '千年의 바람')

금년도 대산문학상(희곡부문)을 수상한 노경식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가. 극작가 노경식은 1938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연극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1965년 고(故) 유치진 선생이 설립한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 개설된 극작 워크숍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가로서 그의 이름을 연극계에 알리게 만든 단막극
철새」는 이 워크숍에서 씌어진 것이었다.

노경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달집」은 1971년 발표되어 '한국연극영화(백상)예술상'의 작품상과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첫 장막인 이 작품은 국립극단에 의해 공연되었으며, 한국신극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의 하나로 평가된다. 노경식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간난' 노파를 통해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변기를 헤쳐 나온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인물의 전형을 창조해냈다.

1974년 '제 1회 전국 지방연극제' 대상을 수상한 「소작지」에서 노경식은 탄탄한 극작술을 바탕으로 한 농부의 토지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집념을 통해, 1920년대 말 한국 농촌의 현실을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낸다. 노경식은 80년대에 들어서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는데, 그의 작품 「정읍사」(1982), 「오돌또기」(1983), 「하늘만큼 먼 나라」(1985), 「타인의 하늘」(1987)은 대한민국연극제(현 서울연극제) 본선에 오른 바 있다. 1995년에는 「서울 가는 길」을 공연했으며, 1999년 「천년의 바람」을 발표했다.

「천년의 바람」은 그러니까 「서울 가는 길」 이후에 4년이라는 오랜 숙고 끝에 산출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천년 전 후삼국이다. 백제의 후예임을 내세운 견훤, 고구려의 위업을 잇겠다는 왕건, 신라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경애왕이 각각 후백제와 고려를 건국하고 신라를 통치하던 시대이다.

그런데 노경식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과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증언하고 있다. 마치 과거라는 거울에 오늘의 모습을 비춰본다고나 할까, 바로 그런 극작 방법은 「천년의 바람」에서 매우 독특한 효과를 거둔다.

「천년의 바람」에는 흥미로운 두 인물이 있다. 즉, 역사를 기록하는 키다리 사관(史官)과 꼽추 사관(史官)인데, 그들이 이 연극을 이끌어나간다. 그러면서 과거 역사에 나타난 권력의 형태가 현재 역사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첫째, 아주 그럴듯한 명분을 앞에 내세운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명분과 다른 행동을 거침없이 하기 마련이다. 둘째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게 강제로 유폐당하는 첫 장면은, 우리가 경험했던 쿠데타와 다르지 않다. 셋째는, 그 권력이 민중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대다수 민중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복무해야 한 권력이, 오히려 소수 지배자의 영화를 위해 종사한다. 넷째는, 권력이란 스스로를 미화(美化)시킨다는 것이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 역사마저 고쳐 쓰게 된다. 「천년의 바람」에서 두 사관(史官)이 봉착하는 최종적인 문제는 바로 그와 같은 역사의 왜곡현상이다. 이에 저항한 한 사관은 목숨마저 잃는다.

시대가 혼미할수록 잘 쓴 역사극을 보고 싶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역사극이 좀처럼 보기 드물고, 또한 역사극을 쓸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극작가 노경식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노경식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역사상의 위인들에서부터 특정 설화나 인물들, 역사와 시대상황에서 민초들이 겪는 집단적 삶의 애환과 저항, 유신시대 획일적 시대상황에 대한 은유, 분단문제, 총체연극, 뮤지컬 등등 매우 다채롭다.

이러한 다채로움 속에서도 그의 작품세계에는 뚜렷한 하나의 경향이 보이는데, 과거의 거울에 오늘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이러한 경향은 과거를 통해 혼돈과 미궁에 빠진 오늘을 비춰보고자 하는 작가의식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이번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선정한 「천년의 바람」 역시 그렇다. 천년 전의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쓴 역사극인 이 작품을 통해 극작가 노경식은 단순히 과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끈질기게 역사 속에서 진실을 탐구해온 그의 자세는 진실의 부재에 대해 섣부르게 회의하고 절망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 이강백 : 극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47년생. 희곡 「쥬라기의 사람들」 「영월행 일기」 느낌 극락같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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