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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와 사회를 관통하... 이미원
 
[노경식희곡집 1- 달집]에 대한 서평으로서 "계간 극작에서 공연까지"(창간호)에 게재~

서 평: <노경식희곡집 1- 달집>

역사와 사회를 관통하는 공공성과 민족관

이미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우리 연극계의 중진 극작가 노경식씨가 그의 희곡집 제1권 <달집>을 출간하였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는 희곡집이었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전5권의 전집을 준비중이라니 다행스럽고 또 기대할 만하다. “연극계나 문학계 전체를 휘둘러봐야 극작가의 수는 고작 백여 명 안팎의 소수민족이고 보면, 끝에서 끝이 보이고 앉아서 천리를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극작가로서의 자질이나 문학적인 이념, 그리고 연극 현장에서의 기여도가 있다고 인정되는 작가를 꼽자면 그 백여 명 중에서도 또 다른 소수민족으로 쫓겨나가야 할 판이다”라는 극작계 현실에서, 극작가 노경식은 차범석의 말대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데는 한 치의 주저도 의구심도 아니 느낀다.” 그리고 이 작품집 발간이 그의 극작세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의 장으로 열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본 희곡집에는 우선 「철새」「격랑」「달집」「징비록」「흑하」등 연대순으로 초기작 5편이 실려 있다. 단막극「철새」는 1965년 신춘문예 당선 데뷔작으로, 직업적인 희곡작가의 출발을 알렸다. 현대 서울 근교의 유원지에 모여든 사진사, 우동장수 여인, 바 마담, 구멍가게 주인 등 뿌리 뽑힌 서민들의 삶을 철새에 비유하며, 휴머니즘에 입각해서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등장한 인물들이 민초이고 사실주의를 견지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노경식 희곡들의 특징이 아직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반면 「격랑」(1966)은 같은 단막물이면서도 노경식 희곡의 여러 특징들이 잘 드러난 셈이다. 6.25의 전쟁을 피해서 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 피난 온 마을 사람들은, 곡식이 떨어지자 젊은이들을 앞세워 물때를 타고 마을에 들어가서 남아있는 양곡을 가져온다. 그런데 이런 일에 어찌된 연고인지 남정네 장정들보다 젊은 여자들이 탁월하다. 결국 그 이유인즉 여자들은 인민군의 성적 노리개 역할을 했었기 때문으로 밝혀진다. 딸의 임신 사실을 안 아버지는 딸더러 죽으라고 몰아치는데, 여기서부터 노경식이 추구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명제는 가히 절대적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고난 받는 민초들이나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주장되는 도덕성과 삶의 가치 등은 앞으로의 노경식 희곡의 특징들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치의 절대성으로 인하여, 노경식의 작품들은 비극적 숭고함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달집」(1971)은 71년 한국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던 연극계에서 공인된 수작(秀作)일뿐더러, 노경식의 대표작이라고도 하겠다. 우리 선조들이 현대사의 핵심이라고 할 6.25 동란이라는 수난을 어떻게 인내하고 헤쳐나갔나를 그리고 있는 「달집」은,「격랑」의 여러 특징들이 보다 강화되어 나타났다. 주인공 간난노파는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으로 남편을, 징용으로 큰아들을 잃었으며, 6.25전란에는 좌.우 이데올로기 동족상쟁의 와중에서 국군이던 큰 손주는 장님이 되고 빨치산이던 작은 손주는 죽임을 당한다. 여인네들의 수난사도 이에 못지않다. 간난노파는 남편 면회를 가서 일본 순사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더한 것은 해방 후 만주로부터의 귀국길에서 로스께에게 성추행을 당한 둘째 며느리는 간난노파의 냉대에 독약을 먹고 죽어갔으며, 빨치산 밤손님에게 역시 성추행을 당한 큰 손주 며느리는 당산나무 가지에 스스로 목을 맨다. 오늘날 돌아보면 불합리하기까지 한 이들의 징벌적인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한국 여인네들의 당찬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불가항력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역경과 혼란 속에서도 당당하고 꿋꿋한 간난노파에게서,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굳건히 살아남는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아니느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도덕적 명제와 삶의 가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 바로 그 도덕적 가치 때문에 그렇게 짓밟히면서도 살아남지 않을 수 없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으며, 꿋꿋한 한국인의 기상이라고도 하겠다. 진실로 역사와 시대상황과 개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공동의 가치관과 태도를 추구하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공공성마저를 띤다. 또한 시대에 걸맞게 전통의 수용에도 눈을 돌려서, 민속놀이인 ‘달집 태우기’를 재현하며 제목도 여기서 따왔다. 한편 토속 전라도 사투리의 활용도 두드러져서, 작품을 한층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징비록」(1975) 역시 임진왜란의 역사 테두리 안에서 개인 유성룡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창작의 여지가 한계적인 소재이지만, 여전히 국가를 생각하는 우국충정과 역사 속에서 개인의 자세를 문제 삼고 있다. 거의 연대기적으로 정사를 기록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아닌 극적행동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달집」에서 보였듯이, 주인공 유성룡은 물론 사명당이나 이순신 등의 인물들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소명을 받은 자들로, 간난노파처럼 더 높은 도덕적 가치에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역사적 심판을 믿기에, 남이 알아주던 말던 자신의 소신을 주장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 주인공들이 「달집」처럼 민초가 아니라 사대부라는 점에서 다를 뿐, 그들은 공공의 역사 안에서 행동한다. 그러하기에 역시 개인적인 희곡이 아니라, 공공성을 띠고 원대한 느낌이다.
「흑하」(1978) 도 일제 말기 만주에서의 무장 독립투쟁을 그리고 있다.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의 독립군 인솔자들이 어떻게 소련의 속임수에 넘어갔는지를 밝히면서, 여전히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오하묵이나 최일리야 같은 개인과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소련군 안으로 들어온 독립군의 모습을 그려서 홍범도의 위인적인 면모가 위축된 감이 있고, 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라면 그 갈등을 좀더 깊이 있는 시각으로 다루었어야 할 것도 같다. 동 작품으로 <대한민국 반공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본 작품에서 공산주의가 단순히 민족주의를 억압했다고 보는 시각을 느낀 것 같다. 여전히 역사 안에서 소명 받은 개인들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징비록」의 연장선상에 있으나, 분명한 역사의식의 구현이라는 점에서는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
이렇듯이 노경식의 초기 희곡들은 대체로 역사 안에서 그 흐름을 바로 세우려 하거나 적어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렸다. 그러하기에 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인물들에게서 영웅적이며 비극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를 배경으로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가치관에 입각하여 사건을 바라보았기에, 그 작품들은 개인적이고 섬세하기보다는 공공적이며 원대하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주인공들은 남성적이며, 굳건하며,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에 비극적이다. 이러한 역사관이나 민족관을 그린 작가로는 노경식씨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과 작품세계는 그만큼 사회적이며, 민족적이고, 또한 공공적인 것이다.
이러한 노경식의 작품세계는 후반에 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싶다. 그는 항상 역사를 직시하고 민족과 그 사회를 고민하고, 그 속에서 사대부 출신이건 민초이건 한 영웅적인 개인을 직시하며 천착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희곡들은 공공성을 띠며 우리 사회와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여기에다 그의 토착적인 사투리 활용과 대사감각은 사실주의극으로서의 완성도를 더해 준다. “황토길의 소달구지”라는 차범석 선생의 지적처럼, 묵묵히 자신의 속도로 끈끈하고도 침착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작가만이 갖는 희곡세계가 “노경식희곡집 1- <달집>”의 이야기라고 감히 단정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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