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이뿌콰'(一步跨)를 아... |
전북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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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단둥(丹東)을 다녀와서]- 압록강 '이뿌콰'를 아십니까 한 발짝 뛰면 북녘땅... 아! 지척이 천리로구나 입력 : 06.08.09 20:34 8.15 해방 61주년을 맞았지만, 55년 후 6.15공동선언문이 채택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변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통일마저 요원하다. 한 발짝만 훌쩍 뛰면 갈 수 있을 것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 북한. 중국 압록강변 이뿌콰에서 분단의 아픔을 통탄한 이 글은 남원 출신의 저명 극작가 노경식씨가 보내왔다. 노씨는 몇년전부터 ‘서울평양연극제’ 창설을 위해 뜻있는 연극인들과 뛰고 있으며, 최근 몇몇 연극인들과 함께 중국 선양(瀋陽)을 방문, 북측 인사들과 연극제 창설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왔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가 중국 러시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두만강 압록강 중에서, 북쪽 땅과 가장 가까운 지점은 어디일까? 두만강의 회령과 도문 사이, 반쪽으로 쪼개진 백두산 천지, 그리고 혜산진의 어떤 지점 등등 여러 군데 있을 터이다. 그런데 압록강 하류께에 ‘한 걸음만 훌쩍 건너뛰면’ 곧바로 북한땅인 지점이 있다. 이름 하여 ‘이뿌콰(一步跨)’다.
우리 일행 4인이 선양에서 압록강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을 향해서 전세 승용차 편으로 출발한 것은 오전 7시 30분경. 220여㎞의 선단(瀋丹) 고속도로를 남으로 달렸다. 흐린 날씨에 하늘의 구름은 금새 비라도 내릴 듯이 낮게 깔리고, 시원하게 달려가는 2차선 고속도로의 속도감과 경쾌함 하며, 차창 양편으로는 푸른 옥수수와 콩밭이 저 지평선 너머까지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동북3성의 광활한 ‘만주 벌판’이다.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 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뜬금없이 이육사 시인의 절창 한 구절이 뇌리를 스쳐간다. 일제에 체포되어 차가운 베이징 감옥에서 한 많은 40년 생을 마감한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도, 아마 압록강을 건너 이 길을 따라 선양을 거쳐서 베이징으로 갔으리라.
일제는 “새 세상, 새 천지가 눈앞에 열렸노라”고 떠들어대며, 최신 유행가까지 만들어서 우리민족을 이 허허벌판으로 내몰았다. 유행가 ‘복지만리(福地萬里)’(작사 김영수, 작곡 이재호, 노래 백년설)는 그 환상을 보여준다. ‘달 실은 마차다 해 실은 마차다/ 청대콩 벌판 위에 휘파람을 불며간다/ 저 언덕을 넘어서면 새세상의 문이 있다/ 황색기층 대륙 길에 빨리가자 방울소리 울리며’.
가난하고 순박하고,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은 수도 없이 이곳으로 넘어왔던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 속에서 우리는 2시간 40여 분만에 단둥에 닿았다. 시내의 한 역사기념관에 잠시 들른 뒤 점심식사는 한 많은 ‘압록강 철다리’(鐵橋)와 신의주 땅이 빤히 보이는 음식점 안동각에서 중국식으로 채웠다. 압록강 유람선에 올라서는 강안 저쪽의 신의주와 고층건물이 즐비한 단둥쪽을 이리저리 조망하면서 반가운 마음과 착잡한 심사로 반 시간쯤을 보냈다. 유람선과 ‘압록강 공원’에서는 기념 사진도 몇 컷을 찍고…. 그러고 나서 우리 일행은 다시 압록강 따라서 동북 방향으로 30여분을 달려서 호산장성에 다다랐다. 젊은 중국인 운전기사 말로는 단둥서 호산까지는 30킬로쯤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호산장성에 도착한 것은 대략 오후 세 시경.
우리가 찾아간 ‘이뿌콰’(一步跨)는 虎山長城’(景區- 관광지) 안에 있었다. 호산장성은 ‘압록강 국가중점 풍경구’ 가운데 하나인데, 중국 만리장성의 동쪽 끝 출발점(起點)이란다. 지금껏 알려진 하북성의 山海關부터가 아니고, 더 동쪽으로 늘어나서 여기 호산장성이야말로 진짜 그 출발지라는 주장이다. 호산장성 입간판에는 만리장성의 ‘東端- 起點’이란 글귀가 또렷하다.
이 虎山長城의 뒤쪽 바로 산 밑 압록강 물가에 있는, 전체가 겨우 3백여 평이 될까말까 한 빈 공터가 ‘이뿌콰’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中朝邊境(國境) 가운데서 가장 가까운 데가 여기 ‘이뿌콰’란다. 한문 글씨 ‘一步跨’의 跨는 ‘넘을 과, 사타구니 과’자이니까 ‘사타구니를 벌려 훌쩍 넘어간다’는 뜻이다. “일보과- 한 걸음, 한 발짝만 건너뛰어라!” 과연 그렇구나. 此岸과 彼岸의 거리는 불과 15∼16여m나 될까말까? 손에 닿을 듯 건너편이 곧 ‘북조선’ 땅이다. 지금 당장 여기서 한 발짝을 훌쩍 건너뛰면 내 나라 내 땅인 북한의 ‘義州郡 방산리’라니 그야말로 지척이 천리로구나! 빈 공터의 이 강 언덕에 서서 북한 땅을 바라다보는 우리네 한국인치고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통이 ‘콱’ 막히고 눈앞이 흐릿흐릿,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있으랴! 드넓고 푸른 압록강이 아니라 한 뼘 남짓 마치 실개천 같은 좁디좁은 도랑물! 그것도 밤새 상류쪽에서 비가 와서 그런지 새까만 흙탕물이 졸졸졸 흐른다. 아니, 진짜로 가깝고 가깝다. 쩌∼그 저 너머가 바로 북한이오? 평시에는 돌로 된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오늘따라 불어난 물에 잠겨서 돌이 보이지 않는다고, 동행한 고종원 교수가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선전용 입간판이나 표지돌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 많이많이 변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 ‘一步跨’ 바위돌 옆에는 또 한 개의 바위돌이 버젓이 서 있다. 붉은 색 글씨로 큼지막하게 새겨진 ’咫尺‘(쯔처)이란 두 글자. 그리고 그 뒷면에는 명나라 태조 朱元璋의 압록강 시가 한 수. ‘지척’이란 여덟 치와 한 자 사이를 이름이니 매우 가까운 거리란 뜻 아닌가. 그래, 지척이 천리이고 지호지간(指呼之間)이라더니, 참말로 지척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감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다. 또 한 차례 가슴이 뭉클하고 애잔해진다.
그건 그렇다치고 이와 같이 ‘咫尺입네’, ‘한 발짝을 훌쩍…’ 어쩌고 하면서 이름 붙여 놓고는 한국인 관광객 유치와 돈벌이에 나선 중국인들의 속내란 것이, 또 한편으로는 너무 영악하고 철두철미한 장삿속이나 아닌지 얄밉고 서글프고 야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一步跨’를 자상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네 시골 동네의 어느 냇가에서 보면 그 야트막한 제방에는 가늘고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이 몇 그루 서 있고, 또한 옥수수와 콩 고추 따위의 채소밭에다가 여기저기 무성한 잡초들, 그러고 호박 넝쿨이 헝클어져 있는 밭뙈기 옆의 작은 공터라면 틀림없겠다. 관광지 치고는 허술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그곳에는 여느 나루터의 원두막 같은 정자 하나가 지어져 있고, 담배와 사탕을 파는 손바닥만한 노점상 하나, 한문 글자가 깊게 새겨진 1m가 넘는 ‘一步跨’와 ‘咫尺’의 큰 바위돌 두 개, 맞은쪽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허름한 망원경 한 대, 그리고 빈 공터에서 경칫돌로 층층이 쌓아 놓은 20여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좁디좁은 압록강 물이며, ‘虎山景區-유람선 노선도’의 입간판이 덩그렇게 높이 서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입간판 아래쪽에는 우리나라 한글도 친절하게(?) 적혀 있다. “경구여행 목선박을 타고 중조양안 풍광구를 관광한다.” 중국과 조선의 압록강 연안을 목선 타고 유람하라는 의미. 목선이라고 해봐야 마치 요트처럼 길쭉하고 열 사람도 채 올라탈 수 없는 발동선 엔진이 달린 쪽배 두 척이 고작이다. 가는 곳마다 돈타령이다. 호산장성 입구의 입장료가 50위엔, 망원경 한번 들여다보는 데 2위엔, 샛노란 구명조끼를 윗몸에 걸치고 쪽배 타고 수초 우거진 좁은 수로를 따라서 한 바퀴 도는 데도 1인당 20위엔 등…. 허나 기념 삼아서라도 통통선 한번 아니탈 수도 없겠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오늘이 7월 14일 금요일이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 함뿍 적셔도 좋으련’ 하고 이육사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도 이 도랑물같이 좁은 압록강 물을 신발 신은 채로 텀벙텀벙 바짓가랭이 함뿍 적시며 훌쩍 한번 넘어가 봐도 좋으련만! 그날 그때는 또 언제쯤일까?
호산장성에서 오후 5시경 귀로에 올랐다. 그동안은 참고 기다렸다는 듯, 소낙비 한 줄기가 세차게 차창을 때린다. 그야말로 상쾌하고 시원한 빗줄기! 조금 전에 우리가 가졌던 시름과 상념을 모조리 다 씻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노경식 작가>는
1938년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징게맹게 너른들’ ‘정읍사’ ‘하늘만큼 먼 나라’ 등 장단막극 30여 편이 있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3회)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동랑유치진 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경식(극작가·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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