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의 명배우 황철을 아십니... |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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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명배우 황철 바로알기 서울평양연극제추진위, 25일 토론회 이재성 기자 “북녘의 명배우 황철(1912~1961·사진)을 아십니까?”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지 않았으나 타고난 음성과 대사 전달 능력으로 우리나라 연극 도입 초기 전설적인 배우가 된 황철. 일제 말기 친일행적과 월북, 술과 여자를 좋아해 끊이지 않았던 스캔들, 한국전쟁 때 인민군 위문공연을 하다 한쪽 팔을 잃어버린 사연 등 인간 황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회는 25일 오후 2시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에서 ‘북쪽 연극 바로 알기-명배우 황철의 인간과 예술세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1부에서는 유민영(연극학자·단국대 석좌교수), 차범석(극작가), 이항나(배우·세종대 겸임교수) 등이 기조발제를 하고, 2부에서는 ‘황철의 육성녹음 듣기’와 토론이 이어진다. 서울평양연극제는 경평축구대회처럼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과 북의 연극을 상연하자는 취지로 서울연극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는 이 사업의 하나로 ‘연극판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연속 토론회를 열고 있다.
노경식 추진위원장은 “50여 년 동안이나 단절됐던 현대 연극사를 복원하는 실마리로 황철을 선택했다”며 “북쪽과 접촉 과정에서 귀하게 얻은 자료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황철의 북쪽에서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황철이 매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다 타계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화국의 첫 인민배우’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교육문화성 부상과 국립연극극장 총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1961년 병사했을 때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사회장을 치렀으며, 우리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됐다.
황철은 1912년 충남 청양에서 청양군수 황우찬의 아들로 태어나, 1932년 신극단체 조선연극사의 연극 <홍길동>에 주인공으로 출연해 명성을 얻었다. 3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극 연출가 홍해성이 이끄는 동양극장의 전속극단 ‘청춘좌’에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임선규 작/박진 연출), <어머니의 힘>(이서구 작) 등에 출연해 일약 최고의 배우가 됐다.
1941년에는 유치진이 주도한 친일어용단체 ‘현대극장’ 창단에 가담했다. 해방 직후 남로당 계열의 낙랑극회를 이해랑, 함세덕 등과 함께 창립해 활동하다 미군정이 체포령을 내리자 피신 중 월북했다.
* 사진 : '리순신 장군' 역의 황철 (평양국립극장 공연,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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