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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연극인생의 半百年을 기리며 [권성덕 산문집]
 
[축하의 말]

연극인생의 半百年을 기리며

노 경 식 (극작가)

나의 연극인 畏友 권 배우님이 올해로 반백년의 연극인생을 맞는다. 그는 누구나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연극계의 큰 자랑이요 ‘국보급 대배우’이다. 권성덕은 연극연출가나 작가도 아닌 오로지 배우의 외길인생을 걸어 지금까지 이르렀다. 약관 20대의 나이에 예술가의 큰뜻을 품고 중앙대학교 연극과에 진학하여 봄바람 가을비 지나서 어언 홍안백발의 70 고개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니까 그의 생의 3분의 2 이상을 연극예술의 외롭고 팍팍한 길을 곁눈질 한번 하지않고 줄기차게(?) 걸어서, 오늘날의 대배우 권성덕을 성취하였으니 어찌 자랑스럽고 경하할 일이 아니랴!

나와 그와의 연극인연은 특기할 것이 별로 없는 셈이다. 나는 가령 그가 몸 담고 활동한 「극단 광장」의 동인제 단원도 아니고, 같은 대학교에서 동문수학했던 선후배 처지도 못되고 ---- 굳이 권성덕과 내가 맺은 연극인연이라면 1970년대 말엽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때에 이화여여자대학교 언저리에 있는 신촌의 「민예극장소극장」에서 허규 선생(극단 대표)이 기획한 “단막극 시리즈” 일련의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에 내 졸작도 한자리 끼어들게 된 것. 작품은 단막극 <父子2>로서 연출은 허 선생 당신이 손수 맡았고, 배우는 그 당시 「국립극단」의 소장 배우 권성덕과 정상철 두 사람이 출연하게 되었다. 아버지 역할의 권 배우는 때 묻은 헌 목수건을 똘똘 말아 이마빼기에 질끈 동여매고는, 바보스럽고 어눌한 아들놈 역의 정상철 배우를 모질고 표독스럽게 몰아붙인다. 연극의 공연성과는 좋은 평가를 얻어냈고, 나 또한 저렇게 훌륭하고 실력있는 젊은 배우들이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때는 아직 그들과는 수인사를 나눌 처지도 아니었다. 왜냐면 그 시절에 노경식은 연극계에서 한 발짝 뒤로 처져있어 아무개 출판사에서 밥벌이를 하는 형편이었으니까.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서 70년대는 명동의 국립극단이 장충동 남산 「국립극장」에서 둥지를 틀게 되자 내 작품도 <징비록>(이해랑 연출/ 1975)을 비롯하여 <흑하>(임영웅 연출/ 1978), <불타는 여울>(이해랑 연출/ 1984), <침묵의 바다>(임영웅 연출/ 1987) 등 4편이나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맞이하였다. 그럴 때마다 극단의 중견배우 권성덕도 그 작품에 출연해 주었음은 불문가지. 특히나 <침묵의 바다>에서 가진 원숙하고 중후한 연기력의 노스님 ‘땡중’ 역할은 상기도 나의 인상에 깊이 남는다. 아마도 권 배우 본인으로서야 하도 수많은 작품에서 빛나는 역할을 많이도 해서 기억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훗날에는 국립극단의 ‘단장겸 예술감독’ 노릇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까 어느새 30여 년의 무심한 세월을 셈하게 되었구료. 허허.

권성덕과 노경식은 내가 2년 연상이므로 ‘성님 먼저 아우 먼저! --’ 하면서 지금껏 다정하게 살아오는 텃수이다. 두 사람 모두 70 고개를 진작에 넘어서고, 내일 모레는 禧年(77세)을 바라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근년에는 아무개 대학교의 초빙교수로서 연극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후학지도에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에 권 배우님이 그동안 지은 글과 에세이를 묶어서 반백년의 연극인생을 기념키로 하였으니 그 즐거움과 보람을 하례하고 술 한 잔이 없을 수 없겠다. 일찍이 松江 鄭澈 선생님의 술 권하는 노래 <將進酒辭> 한 구절로써 술자리를 마련키로 한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꺽고 산 꺾어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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