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문학강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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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집 서울- ‘수요문학광장’ 107 (작가의 말)]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나의 서울 생활은 올해로 꼬박 52년이다. 전라도 “남원 촌놈”이 50년대 말, 아직은 6.25전쟁의 상흔과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암담한 시절에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대학에 들어가고, 그것도 문학예술과는 아예 먼 거리의 경제학과에 입학했다가 어찌어찌 졸업이라고 하고는 그냥 낙향해서 3년간의 하릴없는 룸펜생활, 그러다가 시골 구석에서 우연찮게 또 한번 신문광고를 보고는 재차 뛰쳐올라와 가지고 무작정 남산에 있는 드라마센타 연극아카데미(극작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오늘날 노경식의 ‘My Way’이자 촌놈 한평생의 팔자소관(?)이 된 것. 어린 시절, 나의 고향집은 읍내 한가운데에 있었다. 곧 남원읍에서는 제일 번화한 곳으로 잡화상 가게와 여러 음식점, 중국집, 그러고 하나밖에 없는 문화시설 ”南原劇場“도 거기에 있었고,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시끌벅쩍한 장바닥(시장통)과 <춘향전>에서 유명한 그 ”廣寒樓“의 옛건물 역시 지척에 있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울긋불긋 포장막으로 둘러치고 밤바람에 펄럭이는 가설무대로 온고을 사람들을 달뜨게 하는 곡마단(써어커스) 구경을 빼고 나면, 남원극장에서 틀어주는 ‘활동사진’(영화)과 악극단의 ‘딴따라’ 공연만이 유일한 볼거리요 신나는 오락물이다. 그러고 매년 4월초파일에 열리는 전통의「남원춘향제」때면 天才歌人 임방울과 김소희 선생 등을 비롯해서 전국에서 몰려드는 내노라 하는 판소리 명창과 난장판의 오만가지 행색 및 잡것들. 신파극단의 트럼펫 나팔소리가 <비 내리는 고모령>이나,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은 백일홍--’ 하고 애절하게 울려퍼지는 날이면 어른 아이, 여자와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달뜨지 않은 이가 뉘 있었으랴! 그런 것들이 아마도 철부지 노경식으로 하여금 위대한 극예술(?)과의 첫만남이었으며, 또한 내 피와 영혼 속에 알게 모르게 어떤 接神의 한 경지가 마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문자답해 본다. 어쨌거나 희곡문학과 연극예술에 몸 담은 지 어언 반백년을 헤아리는 세월! 여기서 나는 연전에 「노경식연극제」(舞天劇藝術學會 주최, 2003)의 ‘작가의 말’에서 피력한 소회의 일단을 옮겨놓기로 한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극작품을 뒤돌아보니, 무대공연에 올려진 희곡만 장· 단막극을 합쳐서 모두 40여 편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서 “쓸 만한 작품”이 몇이나 되고, 뒷날까지 건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때로는 사계 여러분과 관객에게서 과분한 평가를 받은 물건(?)이 5, 6편은 되는 것도 같은데, 과연 그런 평가들이 먼 훗날까지도 이어질 수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의 연극예술과 극문학 발전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위안도 되나, 오히려 허전함과 부끄러움이 앞선다. 허나 어찌 하랴. 워낙에 생긴 그릇이 못나고 작고 얕으며 大鵬의 뜻이 미치지 못하는 바에야,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걸어가는 수밖에----‘
◇ 노경식 극작가의 약연보 1938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남 경희대 경제학과(10회) 졸업, 드라마센타 演劇아카데미 수료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 한국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작가회의 회원 및 이사, 한국PEN클럽 ITI한국본부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원
1965-73 「한국극작워크숍」 同人 (呂石基 교수 지도) 1970-82 同和出版公社에 입사, 編輯主幹(국장) 1989 전국연극제 심사위원 (포항 춘천 등 7회) 1991 서울연극제 심사위원(15, 17회) 2003 “노경식연극제” 개최- ‘舞天극예술학회’(대구) 2006 『南原市立圖書館』에 장서 4천여 권 기증 2008 “한국연극100년대토론회”(서울포럼) 집행위원장 작품: <달집>(71) <소작지>(79) <정읍사>(82) <하늘만큼 먼나라>(85)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 94) <서울 가는 길>(95) <두 영웅>(2007) 외 40여 편. 저서: 『노경식희곡집』(전5권) 『무학대사』(2권) 『사명대사』(3권) 『신돈』 불어번역극집 『Un pays aussi lointain que le ciel』(‘하늘만큼 먼나라‘ 외) 수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대상’ ‘동아연극상작품상’ ‘大山문학상’ ’유치진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대상‘ ’서울시문화상‘ ’예총예술문화상 대상‘ 현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서울연극협회)/ 『극작에서 공연까지』(연극계간지) 편집위원장/ (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재) 차범석연극재단 이사
[증 언] ‘노경식은 이렇게 역사상의 인물이나 설화 속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거나, 또 그들과 함께 역사와 시대를 살아가면서 전통적 질서와 정서를 지키려는 익명의 민초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겪는 집단적 삶의 애환과 그들의 말없는 저항을 즐겨 다루고 있다. 그것이 타작가들과 구별되는 그의 희곡세계이며, 전통적 정서를 토속적 언어로 구사하되, 노래와 춤과 시를 즐겨 곁들이는 드라마투르기라든지, 역사와 시대에 희생되고 있는 민중들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감싸고 위로하는 휴머니즘이 노경식의 희곡적 특성이다. 그러므로 노경식은 휴머니스트이며, 사실주의 희곡작가이다. 유치진과 차범석에 이어서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 그 위상은 확보되었다.‘ 한옥근 (희곡작가,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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