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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1)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 檄 文
 
[檄 文- ‘국립극단을 살립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국립극단’

노 경 식 (극작가)

서울의 남산 언덕빼기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극단이 올해로 60주년 환갑의 해를 맞는다. 그 당시 가난한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문화입국을 표방하며 순수연극예술의 보호육성을 위해 ‘국립극단’을 설립하게 됨은 우리 선열들의 탁견이자 형안이라고 하겠다. 1950년 봄에 창설된 국립극단은 태어나자마자 한국전쟁의 참화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어 경제적 근대화와 민주화의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춘풍추우 60개 성상, 그동안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국립극단이 그 척박하고 빈약한 우리나라 연극 풍토 속에서 이룩한 예술적 성취와 업적은 한껏 빛나는 것이었고, 극단의 공과를 논함에 있어서도 과와 허물보다는 공로쪽에 점수를 매기는 것에 우리가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작금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 국립극단을 ‘재단법인’화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국립극단 죽느냐 사는냐 고뇌는 끝났다’ 1월 22일, 경향신문 ‘국립극장 법인화 공공성 훼손’ 1월 20일) 기업과 단체의 법인화란 ‘상업화’로 가는 길이다. ‘상업화’란 돈 놓고 돈 따먹기. 곧 요즘 말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광풍’ 속에서 적자생존의 스스로 살길을 찾아보라는 것. 그러나 단체와 조직의 성격상 결단코 그렇게 할 수 없는 분야들이 있다. 단순히 시장논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역. 가령 언어영역과 고고학 같은 인문학, 수학과 물리 같은 기초과학, 문학과 연극 무용 같은 순수기초예술 분야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와 같이 다만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논리만으로 처분할 수 없는 장르는 국가발전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적절하게 돌봐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요 국책이다.
시방 국립극단의 ‘재단법인화 문제’는 그 명분과 대의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보도에 의하면 전속단원을 ‘물갈이하고 능력있는 배우들로 새판’을 짜기 위한 것이라나? 그래, 새 좋은 배우로써 물갈이를 하는 데 있어 그 방법론이란 것이 겨우 ‘국립극단의 법인화’란 말인가. 역사 있는 순수예술단체를 상업성과 오락판의 돗데기 시장바닥으로 몰아내자는 것인가? 국립극단의 법인화는 발전적 개선책이 아닌 퇴영적 후퇴이다. 그야말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불지르는 꼴이다. 그동안 국립극단의 예술적 성취가 미미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배우들만의 오류는 아닐터. 행정 주도의 관료주의적 운영제도, 미미한 지원예산, 정치적 배려에 의한 인사정책, 그리고 마치 점령군이 전리품 다루듯이 극단을 사물화시켜 버린 역대의 예술감독들. 그런데도 모든 잘못과 허물을 배우들이 뒤집어쓴 상황이다. 전속배우의 물갈이를 위해서라면 다른 방책을 찾아라. 교각살우(矯角殺牛), 쇠뿔 고치자고 황소 잡아먹는 격으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60년 국립극단을 ‘죽이고’ 무엇을 얻어내자는 것인가! 3백 년 전통의 프랑스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는 배우가 2백 명이나 되고,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러시아의 ’말리극장‘은 전속단원이 80명이라고 듣고 있다. 영국의 국립극장은 전속배우만 1백 명이 훨씬 넘는 데 비해서, 우리의 국립극단은 장민호 백성희 두 원로배우를 포함하여 낯 부끄럽고 초라하게도 겨우 23명 숫자. 국립극단의 이런 숫자 놀음은 60년 전의 극단 창설 때와 엇비슷다. 그때 그 시절의 연극 예술가는 모조리 합쳐서 백여 명이 될까말까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연극인 인구는 서울연극협회에 등록된 숫자만 쳐도 3천여 명으로 무려 30배가 넘게 불어났다. 나라의 국력과 국격 또한 선진국 대열이라고 이른바 장광설치는 마당에, 이 같은 문화지형의 실상에는 도통 귀 막고 눈 감고 딴전만 피우고 공염불이나 외고 있으니 참으로 황당하고 답답할 뿐이다.
사족 같은 말 한마디. 바라건대 지금껏 한 솥밥 먹고 더불어 살아온 당해 주무장관은 행여 ‘국립극단을 없애버렸다는’ 역사의 오점과, 연극인 본인의 한평생 불명예를 남기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에 나는, “국립극단 살리기 범연극인회의”를 제창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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