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입에는 파이프 물고 ... |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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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국물있사옵니다>
입에는 파이프 물고 한손에는 술잔 들고
ROH Kyeong-Shik (극작가)
연전에 나의 <서울로 가는 기차>(2004) 등 희곡작품 3편을 묶어 불어번역본으로 발간해 준 헤르베씨 부부의 친절한 인연에 의해 이 글을 쓴다. 사연인즉 2010년 새해 봄에는 이근삼 작 <국물있사옵니다>가 새롭게 불어로 번역되어 파리에서 상재되는 모양인데, 그 단행본의 ‘머리말’을 나에게 청탁해 온 것.
이근삼 선생과 나는 10년 터울의 손 아래 극작가로서 당신 생전에는 ‘선생님, 선생님’으로 깎듯이 받들어 모셔왔고, 또한 동년배처럼 만나서 스스럼없이 즐겁게 술친구도 될 수 있는 그런 처지였다. 그건 이 선생이 평소에 소탈하고 대범해서 언제나 웃사람보다는 아랫사람을 더욱 아끼고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과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젊은이들을 가리켜서 그는, ‘모든 역경을 뚫고 고질적인 독선과 싸워가며 이 땅에 연극을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는 젊은 연극인들은 나에게 무한한 용기를 주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었다.
이근삼 선생은 허위대가 커서 6척 장신에다가 뼈대(骨格)가 굵고 헌헌장부의 풍채였다. 아마도 ‘통뼈 체질’이라서 누군가와 팔씨름을 해도 결코 지지는 않았을 것. 거기에 위 아래가 다른 콤비를 즐게 입는 멋쟁이 사나이였다. 그러고 술을 좋아해서 가위 ‘酒豪’의 반열에 오름직하고, 또한 파이프 담배를 즐기는 애연가였다. 서양의 독특한 잎답배 향기가 실내에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한손으로는 술잔을 치켜들고 -- 그러다가 어느 때는 곰방대 파이프가 아닌 상아 물부리에 권련 한 개피를 끼워 물고서 마치 굴뚝처럼 담배 연기를 줄곧 뿜어내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싫어하거나 말거나. 술은 대개 독한 ‘쐬주’를 좋아하고, 마지막에는 꼭- ‘양주’(스코치 위스키)로 뒷풀이하기를 즐긴다. 따라서 상대방의 취기와 주량은 모르쇠로 하고, 당신의 기분에 젖어서 막무가내로 양주집에 끌고 가거나, 아니면 선생 댁으로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6, 70년대의 夜間通禁 시간이 있던 시절에는 그대로 잠자고 가기 일쑤. 그러면 이튿날 아침에는 사모님이 해장국까지 시원하게 끓여서 내온다. 그런 버릇(?)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선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눈치를 봐가면서 살째기 줄핼랑을 놓을 수밖에. 언젠가 이 선생님 딸이, ‘아버지는 읽고 쓰고 술 마시고 여행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고 한 말은 저간의 사정을 증언하는 것 아닌가.
이 선생께서 유명을 달리 하시기 2년 전인 2001년 겨울의 일. 때에 선생은 그해에 발표한 장막희곡 <화려한 家出>을 가지고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작품은 근 30년 동안 고등학교 배구 코치로 일하다가가 은퇴하면서도 끝까지 자존심을 내세워 타협을 거부하는 늙은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로 자전적 요소가 강한 줄거리이다. 축하차 그날의 시상식장을 찾아간 나한테 당신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로 하는 말. 그 평안도의 ‘고향 사투리’를 이 선생은 한평생 버리지 못하였다. “야아, 요거 우리네 선배 작가님 왔어, 야? 하하 --” 하고 반갑게 파안대소하며 손 잡고 껴안아주었다. 그건 이 선생보다 내가 앞서서 그 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스개 소리로 말씀한 것. 그런 추억이 어제 일만 같다.
일찍이 연극사학자 유민영(Yoo Min-Young)씨는 이근삼을 가리켜서 ‘한국의 리얼리즘 연극무대에 현대성을 불어넣은 知的作家’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이근삼의 수많은 작품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반사실주의 희곡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와 풍자를 사용하여 한국연극의 희극 장르, 곧 코메디를 개척한 독보적이고 선구자적 존재이다. 이근삼의 초기작에 속하는 사회풍자극 <국물있사옵니다>(1966) 역시 이를 웅변하고 있는데, 한 선량한 주인공이 사회생활에서 출세하기 위해 타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한국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인간성의 황폐화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근삼 대표희곡선집 『국물있사옵니다』(문학세계사, 1988)의 작가 서문에서, ‘1960년대의 전도된 가치관과 상식이 안통하는 사회에 대한 노여움 같은 것을 느껴 쓴 작품’이라고 作意를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근삼 선생은 극작가 생활 40여 년에 6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으니 결코 寡作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의 고향은 북한의 수도 평양이다. 그는 8. 15해방 후 단신으로 월남하여 자수성가한 인간이다. 그의 남 다른 향학열과 피나는 노력은 20대 후반에 벌써 대학 강단에 서게 한 이래, 40년을 넘게 대학교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길러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근삼(1929-2003)에게는 사랑하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딸 하나는 일찍이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무대미술가로 현재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남편 역시 같은 연극의 길에서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리고 지난 2008년도에는 이 선생의 가까운 제자와 친지들이 뜻을 모아, 사후 5년만에 『이근삼전집』(전6권, 연극과인간)을 완간한 바 있다.
이근삼 작 『국물있사옵니다』의 불어출간을 충심으로 축하한다. (끝)
** 이근삼 작 '국물있사옵니다' (불어번역본) '서문' (파리 IMAGO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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