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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때 좋다 벗님네야, 춘향제 구... 南道紀行
 
[南道紀行- ‘전북일보’]

‘때 좋다 벗님네야, 春香祭 구경가세‘

극작가 盧 炅 植

긴긴 겨울인가 싶더니, 벌써 3월도 가고 春四月이다.
신문, 방송은 진작부터 남쪽의 봄소식을 알려오고, 제주섬의 유채꽃이 만발했고,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 하며, 鎭海 軍港祭의 벚꽃놀이가 어떻다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면서 나그네의 旅情을 부추기고 설레이게 한다.
원래 관광이니 여행이니 하는 것은 소문난 名勝地나 유서깊은 古蹟을 찾아서 낯선 풍물을 만나고 人情에 접하는 것이 제격이겠다. 허나 늘상 산업화와 도시화의 생활에 찌들어버린 나 같은 拙夫로서야, 내가 잘 알고 가슴속에 간직하여 못내 잊을 수 없는 그 어느 한 곳을 찾아서 총총히 발길을 재촉하는 것도 또한 훌륭하고 멋진 여행이 아니랴. 그래서 나는 불쑥 내 고향 땅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적어도 1년에 한번쯤은 어떤 구실로든지 반드시 고향을 찾아보는 것이 수년래의 내 痼疾처럼 되어 온 터이지만, 오늘따라 감회가 새롭다. 잔뼈를 키우면서, 티없이 맑게 손잡고 함께 자라던 꿈 많던 시절의 金某, 高某, 柳某 하는 친구들이 중늙은이(?)가 돼서 아직도 건재하고, 추억과 사연이 담긴 곳곳의 낯익은 산고 들과 냇가 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묘소가 그곳에 계신다.

이름하여 全羅道 南原땅.
“春香골” 남원은 내 구원의 고향이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龍城국민학교와 龍城中學을 다녔고, 농업학교를 마쳤다. 南道 七百里 --
서울서 떠난 기차가 전라도의 裡里驛을 지나 드넓은 곡창지대 萬頃뜰을 바라보면서 호남의 雄都 全州에 닿았으며, 기차는 다시 속력을 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관촌과 임실을 지나고, 구불구불 오수를 지나면 다음 정거장이 南原驛이다. 그 옛날 백제시대에 築城되었다는, 아직도 성터가 완연하게 남아있는 蛟龍山城의 뒤쪽을 돌아 느릿느릿 기차가 서행하면서 내려가자면, 남쪽 차창 밖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南原小京”이 바로 코앞에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어느새 선반의 가방을 챙겨내리고, 넥타이를 매만지면서 설레이는 가슴을 억누르고 가벼운 흥분을 느낀다. 남원소경이란 통일신라시대에 붙여진 공식명칭이니, 전라좌도의 으뜸가는 고을로서 옛부터 특색있는 南原文化圈을 형성해냈음을 이름이다.

남원은 貞節과 藝術의 고장이다. 우리 가락 판소리 음악과 국문학상의 불후의 걸작 <춘향전>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며, 고대 소설문학의 白眉를 이루는 金時習의 <금오신화> 중에서 <만복사저포기>를 탄생시킨 무대도 이곳이다. 판소리의 中始祖 宋興祿을 비롯해서 宋萬甲, 劉成俊, 李花中仙 등이 이곳에서 명을 받아 태어났고, 그 기라성 같은 찬란한 한국 판소리의 인맥은 또한 오늘의 國唱 朴初月을 낳아서 姜道根과 오갑순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이랴. 남원은 또한 義血의 고장이다. 정거장에 내리면 역광장에 서있는 己未三一運動의 기념탑이 이를 증거하고, 돌아서 북향을 바라다보면 산 아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커더란 墓의 깨끗하게 단장된 聖域이 눈을 맑게 한다.
“萬人義塚 --“
16세기 왜적의 침략으로 나라와 강토가 짓밟히고 초토화되는 國變을 당하여, 관군 5천(明軍 2천 명 포함)과 民軍 5천이 합심으로 南原城을 사수하다가 勢不利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침으로써 순절보국한 선인들의 영령을 모신 곳이니, 정유재란 때의 일이다. 中秋佳節 8월 한가위, 그해 추석 다음날이 바로 비극과 통한의 그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반공중에 높이 떠있던 둥근 보름달도 차마 눈물짓고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 구경가세 --” 해마다 음력 사월 초파일이면 남원의 “春香祭”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춘향이의 만고충절을 기리는 이 향토제전은 이미 반세기를 넘어 면면히 이어오는 민속놀이이다. 판소리 명창대회와 춘향이 그네타기, 활쏘기, 장사씨름대회, 가장행렬, 난장 등등으로 인근 수만의 인구가 참여하여 흥청댐으로써, 한번쯤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파탈하고 어울려보는 것도 그 아니 흔쾌하고 좋은 일이 아니랴.

남원이 낳은 근세 여류문학의 거봉 三宜堂 金氏의 漢詩 한 수를 가지고 내가 태어난 고향 땅 남원과의 질긴 宿緣과 기쁨을 노래하기로 한다.

'같은 나이 열여덟의 신랑과 신부
한날 한시에 한마을에 태어나서
동방화촉 인연을 맺었으니
어찌타 이 밤의 기쁨을
한갓 우연이라 이르리오.'

[이 글은 1984년 4월 26일(목)치 ‘전북일보’의 기획기사 “南道紀行- 시리이즈 5”에 기고한 원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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