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老俳優를 위한 항변' |
時 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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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두 명의 老俳優를 위한 抗辯 서울 장충동의 남산 숲속에는 하얗고 훤출한 모습의 국립극장 건물 하나가 서있다. 그 국립극장에는 내일 모레 米壽를 바라보고 80대 중반을 넘어서는 노배우 두 명이 목하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각각 백성희와 장민호씨. 올봄에도 그들은 국립극단의 신작공연 <백년언약>에서 각자 남녀 주인공역을 맡아서 혼신의 열정과 예술혼을 쏟아낸 바 있었다. 그들의 일상생활과 삶은 평범한 가정생활 속에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연극무대와 어두컴컴한 분장실 속에서 보낸 시간과 세월들이 훨씬 많았으리라고 짐작된다. 밤중의 잠자리와 옷 갈아입을 때 말고는 그저 자나깨나 극장무대와 연습실과 술집(?)에서. 그 두 명의 노배우는 그렇게 연극예술과 더불어서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극장측에서는 두 노배우한테 극장을 떠나라고, 극단을 그만두고 사직하라는 얘기가 통고되었노라고 전한다. 이름하여 국립극장의 제도개선에 의한 ‘60세 정년제’를 실시할 계획이라나?
여기서 난 국립극장의 제도개선이니 60세 정년제니 하는 것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없다. 행정당국의 조직과 제도개선은 그 나름대로 정당성과 명분을 갖는 일일 테니까 --그 문제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논외로 하자. 그런데 ‘60세 정년제‘란 이름으로 두 노배우를 끼워팔기 하듯이 도매금으로 ”퇴출“(退出)시키려는 처사에 대해서는 도대체 설득력이 없고 마뜩치 않고 한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들 장민호와 백성희, 두 분의 노배우가 어떤 위인들인가? 그들은 첫째, 모든 이가 서로 인정하는 빼어난 연극배우이자 대배우라는 사실에 췌언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연극배우로서 예술적 성취와 혁혁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이다. 젊어서 홍안의 20대에 척박하고 가난하고 천시받는 광대세계(연극)에 입문한 이래,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에다 예술적 정열과 사명감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우리나라 동시대의 명배우 반열에 오르고 대성한 국보급 대배우들이다.
둘째로, 그들은 국립극장의 간판얼굴이자 국립극단 지킴이로서 지금껏 살아왔다. 국립극단 하면 장민호 백성희요, 백성희 장민호 하면 국립극단이다. 그들은 건국초기 1950년의 첫 국립극단 창설 때에 이미 벌써 배우로서 참여했었고, 그로부터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 오늘날까지 국립극단과 한몸 되어 울고 웃으면서 살아왔다. 한국전쟁의 혼란과 고난의 와중에도 그들은 피난지 대구와 부산에서 분 바르고 연극무대에 올랐었다. 포탄이 작열하는 최전선을 찾아가서 국군 병사들을 위한 위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60년대의 가난과 7, 80년대의 개발독재와 민주화운동, 90년대의 IMF 금융위기 속에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분 바르고 무대에 올라서 구슬땀 흘려가며 구석구석을 누비고다녔다. 시대와 세월을 따라서, 그때마다 그들은 고단하고 가난하고 지친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선사하였으며, 서민들을 잠시나마 위로하고 삶의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우린 두 노배우의 사회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예술적 공헌과 큰 업적을 깊이 되새겨야만 한다. 그들의 빛나는 예술적 삶과 한평생을 과소평가하거나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일찍이 연극평론가 한상철 교수는 <잊지 못할 명배우- 백성희, 장민호, 이해랑>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설파한 적이 있다. 노경식 <달집>의 ‘간난노파’ 백성희, 오태석 <사추기>에서 한국 남성의 정형을 창조해 낸 장민호의 ‘아버지 역‘,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늙은 구두쇠 아버지 ’티론‘을 연기한 이해랑(1989년 작고) 등등.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의 ’로렌스 올리비에극장‘,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있는 ’헬렌 헤이즈극장‘, 프랑스 파리의 ’사라 베르나르극장’, 모스크바의 250년 전통의 말리극장에 있는 ‘셰프킨연기연구소’. 이들 모두는 당대 명배우의 예술적 업적과 사회적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들이다. 아직도 생각이 부족해서 두 노배우를 기리는 극장 이름 하나 갖지 못한 형편이지만, 어줍짢은 ‘60세 정년제‘라는 핑계를 가지고 그네들을 파직시키려들다니! 나는 기대한다. 연전에 작고하신 대배우 김동원 선생처럼 스스로 은퇴를 결정한다면 몰라도, 장, 백 두 노배우는 그들 자신의 결정에 따라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하자. 당신들의 기억력이 쇠진하여 비록 대사는 외울 수 없다쳐도, 분 바르고 휠체어 타고 ’묵언의 연기력‘으로써, 무대의 밝은 조명빛 아래 의연히 앉아 있을 노배우의 완숙하고 멋들어진 명연기를, 우리는 언제까지나 기대하고 보고싶어 한다.
거듭 항변하거니와, 남산 국립극장은 장민호와 백성희 두 노배우의 예술적 보급자리이자 삶의 터전이다. 두 노배우의 한평생 “직장을 빼앗고 퇴출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뒷방 늙은이를 만드는 과오와 어리석음은 제발 범하지 않기 바란다. 하늘 아래 귀한 것이 사람이다. 후회하면 늦는다. 감히 바라건대, 행정당국의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끝)
* <극작에서 공연까지> 2008년 가을호(17) '卷頭時論'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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