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史에 빛나는 忠節이여' |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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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노경식
'靑史에 빛나는 忠節이여'
고려왕실 5백 년의 마지막 기둥 포은 정몽주 선생이 선죽교 다리에서 비극적 최후를 마치고, 3개 월 후에는 새 조선왕조가 개국하게 되며, 대장군 이성계가 태조 임금에 등극합니다. 그런데 그 포은 선생이 죽고 불과 10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역사의 사나운 물결과 인간의 세상살이는 또 한번 크게 굴절하고 요동을 치게 됩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할까. 그 당시 포은의 반대쪽 이성계 이방원 편에 서서 개국공신 1등으로, 새 왕조의 설계자라고 할 정도전의 운명 또한 백팔십 도로 뒤바뀌게 되지요. 그러니까 겨우 6년 세월을 더 살고 나서는, 그 명신 중의 명신 정도전 역시 권력투쟁의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의 손에 ‘만고역적’으로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고 태조 이성계 또한 둘째아들 방과(定宗)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는 귀양살이하듯 함경도 땅으로 내려가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로부터 3년 뒤(포은 사후 8년)에는, 마침내 이방원이 제3대 보위에 오르고 창업수성의 대업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의 즉위원년(太宗元年, 1401)에 이방원이가 우선 먼저 행한 국사는, ‘만세(萬歲)의 강상(綱常)을 굳게 하기 위해서 절의(節義)를 포창(襃彰)’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원 스스로 당신님의 피 묻은 손에 죽어간 ‘전조(前朝)의 시중(侍中) 정몽주’(역적)를 신원해서 영의정에 추증하고,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추봉하며, 시호는 ‘문충’(文忠)이 됩니다.
6백여 년 전의 옛일이 오늘날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사회윤리와 강상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가치관이 뒤범벅된 세상이라고 하나,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가 한번쯤은 성찰하고픈 심사입니다. 시쳇말로 자신의 안위와 목전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것이 진짜로 뽐낼 일이고 자랑이며, 선(善)이고 정도(正道)일까요? --
작가의 이번 작품은 전적으로 연출가 김삼일 선생에게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전혀 뜻하지 않게도, 멀리 서울에까지 원고청탁을 받게 된 것이 그 계기입니다. 해서 새삼스레 역사 공부도 많이 하고, 배우고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물론 적당히 ‘단심가’로만 알고 지내왔던 만고충신 정포은 선생 탯자리가 여기 포항 고을인 줄도 인제서야 알게 됐고, 허허. 끝으로, 이와 같이 훌륭하고 멋진 자리를 마련해 준 포항문화예술회관 박정원 관장님 이하 시립연극단 배우분들 및 관련 직원 여러분에게 깊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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