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5- '춘향제' 구경가... |
전북일보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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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춘향제' 구경가세!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0) 입력 : 07.05.02 19:13
그 유서 깊은 ‘남원 춘향제’가 내일부터 닷새 동안(5월 4일~8일) 광한루원을 중심으로 흥겹게 펼쳐진다. 올해로 77회째라니 가히 역사와 전통을 짐작할 만하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남원권번(券番)의 기생들 몇몇이 모여서 열녀춘향의 정절을 기리고자 제향을 모신 것이 그 효시였단다.
나에게 있어 춘향제 하면 1950년대 초 중고교의 10대 소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6.25전쟁의 끔찍한 뒤끝이라 궁핍과 간난시련 속에 살아가기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음력 사월 초파일 춘향제 날이 돌아오면- 지금은 5월 5일이지만-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남원 사람들은 신나게 기분이 좋고 저마다 달뜨기 마련이다. 그 유명한 광한루에서부터 남원극장이 있는 은행 사거리의 동서남북 큰길가 푸른 가로수 끝에는 청사초롱이 매달려서 봄바람에 나부끼고, 풍물 걸궁패들은 귀창이 떨어지게 날라리 소리를 앞세우고 북과 꽹과리 장구 징을 울리면서 길거리 한복판을 미어터지게 흘러간다. 덩실덩실 춤추며 뒤따르는 것은 술주정꾼과 건달뿐 아니라 코흘리개 어린것들도 줄레줄레 한 몫을 놀고--
여기 광한루야말로 춘향과 이도령이가 첫눈에 홀딱 서로 반해서 ‘천년사랑’을 일궈냈던 바로 그 자리가 아닌가? 남원 군민들은 겨우내 장롱 속에 감춰뒀던 봄나들이 새옷으로 말끔히 갈아입고 꾸역꾸역 광한루 경내로 몰려든다. 비단 남원뿐일까. 인근고을인 순창과 곡성, 임실 전주, 순천 여수, 지리산 연재 너머 경상도 함양과 진주 땅에서도 오고-- 광한루 연못(호수)에서는 황금빛 잉어떼가 한가로이 헤엄쳐 놀고, 누각 안에서는 판소리 명창대회가, 누각 아래의 우람한 느티나무에서는 춘향이 그네뛰기가 하늘을 날아갈 듯 한창이다. 그러고 또 한쪽 구석의 외진 곳에서는 ‘난장판이 텄다.’ 뺑뺑이판 돌려서 숫자 찍기, 트럼프 넉 장으로 그림 맞추기, 화투놀이의 짓고 땡이나 또는 갑오잡기의 ‘모이쬬’ 등등-- 광한루 경내와 읍내 길거리, 장터와 시장통은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루고, 구경꾼들이 신나는 굿판을 찾아서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서 간다.
그뿐인가. 활쏘기 궁도대회, 장사씨름대회, 곡마단의 써커스 놀이, 신파악극단의 <비 내리는 고모령>의 요란한 프럼펫 소리와 밤마다 용성학교 운동장에서 틀어주는 ‘리버티 뉴스’(대한뉴스)의 활동사진 등등. 그러나 역시 하일라이트는 대개 춘향제의 마지막 날 남원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나라 명창들의 판소리 발표회--
“그런깨로 명창 임방울 선생이 내레오고, 박초월이도 오고 또 김소희도 서울서 왔다는고만. 워매, 신나고 좋은 거!”
그날 밤, 남원극장은 입추의 여지 없이 극장 안이 터져나갈 듯 초만원을 이룬다. 임방울 선생의 <쑥대머리>에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함께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나오고,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남원 출신의 강도근씨는 <흥부가> 한 대목을 열창하느라고 온몸의 땀이 얼굴에 비 오듯이 흐른다. ----
그 시절이야말로 ‘춘향제’는 고달프고 따분한 우리들의 세상살이 속에서 한 가닥 위안이자 축복이요 즐거움이었다. 오로지 그날만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렇고 그런 평범함과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못 크나큰 파격이고 대담한 일탈이며, 신선한 해방감이자 풍만한 자유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
“벗님네야, 남원 춘향제 귀겡 가시제라우,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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