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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타향에서] 3- '동편제'에 홀린 ... 전북일보 칼럼
 
[타향에서] '동편제' 에 홀린 사나이

노경식(극작가·서울평양연극제추진위원장)

(0) 입력 : 07.03.07 19:06

高敞城 높이앉아 羅州풍경 바라보니/ 萬丈雲峰 높이솟아 층층한 益山이요/-- 南原에 봄이들어 각색화초 茂長하니/ 나무나무 任實이요 가지가지 玉果로다~

판소리 단가 <호남가>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판소리 음악이 지난 2003년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은 알만한 사람은 익히 알고 지내는 터. 그런데 오늘은 그 판소리의 태동지인 남원 고을에서 25여 년 동안을 ‘지리산 동편제’ 소리에 미쳐(?) 발품 팔며 혼자서 소리소문 없이 연구하고 있는 무명의 전문가 한 사람을 소개치 않을 수 없겠다. 그의 이름은 김용근(48)씨로 지리산에 가까운 산내면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그의 태생으로 말하면 남원시 주천면의 육모정 근방인데, 고향에서 학교를 나오고 곧장 지방공무원 생활에 들어가서 근무연한 21년째이며, 어쩌다가 판소리 음악에 재미 붙여서 옹근 25년간이란다. 그러니까 지리산 동편제의 뿌리와 맥을 찾아서 그는 잊혀지고 묻혀 있는 자료수집과 발굴 및 현장조사를 위해 긴긴 한세월을 바치고 있는 셈이다.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그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판소리 유파[法制]가 발달한 모양인데, 광주 나주와 보성 장흥 고창 정읍 등지는 ‘서편제’라 이르고, 지리산록의 동쪽 남원 운봉을 중심으로 한 구례 순창 흥덕 임실 전주는 ‘동편제’라고 부른다. 서편제[界面調]란 그 소리가 맑고 높고 아름답고 애원처절하여 여성적이라면, 동편제[羽調]는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장중하고 씩씩하고 호방하고 웅건청담하여 남성적이라는 것. 어쨌거나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말에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동편제를 일으킨 송흥록 선생은 남원 운봉면의 비전거리[碑殿里]가 탯자리이다. 가왕(歌王) 송흥록의 출생지가 운봉이란 것은 전설적으로 전해 올 뿐 실증적 자료도 별로 없고 전무한 상태이다. 그런데 김용근은 송씨 가문의 족보를 뒤지고 호적을 찾고 또 찾아서 송흥록 선생의 6대장손 아무개씨가 현재 경기도 수원에서 버젓이 건재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고 그의 공적 중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난 일제강점시기의 암흑과 광기 속에서 우리네 서민대중의 시름과 한과 설음을 달래주던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에 관한 출생지와 주소 및 묘지 등을 근근히 찾아내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도 했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명창의 고향은 경상도의 부산이 아니고 전라도의 남쪽 바닷가 목포(남교동 12번지)이며, 그녀가 남원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당시 유명한 ‘남원권번’에서 기생수업을 하였고 남원읍내 ‘천거리’가 주거지였다는 등등.

‘동편제’에 홀린 사나이 김용근씨! 고향 땅에서 그냥 공무원 생활이나 잘하고 지내면 좋을 텐데, 무슨 판소리 귀신이 씌우고 애향심이 발동해서 그 지랄(?)이며 그 고생일꼬? 생각하면 그 공무원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엊그제 YTN 인터넷방송에 올해 전주시에서는 가정주부 학생 어린이 할 것 없이 “판소리 대중화 운동”에 나서서, 시민들이 <호남가>를 배우느라고 한창이라는 토막뉴스를 봤다. 오매오매, 신명나고 좋은 일이고말고 잉. --

우리 호남의 굳은 法聖, 全州百姓을 거나리고/ 長成을 멀리쌓고 長水로만 돌아들어/ 礪山石에다 칼을갈아 南平樓에다 꽂았으니/ 조선예의란 三禮도 으뜸인가, 거드렁거리고 놀아나보세.


* 노경식씨는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초, 중, 남원농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소작지’ ‘井邑詞’ ‘하늘만큼 먼나라’ ‘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들’ 등 장단막극 30여 편을 썼으며,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산문학상, 동랑유치진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서울특별시문화상 (연극)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차범석연극재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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