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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타향에서] 4- '해란강아 말하... 전북일보 칼럼
 
[타향에서] ‘해란강아 말하라’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0) 입력 : 07.04.04 19:12

중국 연변의 연길시 한 호텔(羅京飯店)에서 가볍게 한식뷔페로 아침을 때우고 두만강을 찾아 보려고 승용차를 출발시킨 것은 대략 오전 아홉 시경이었다. ‘중조변경’(국경)을 백두산에서부터 동북쪽으로 흘러 동해 바다로 들어가는 두만강을 만나보는 것은 누구한테나 가벼운 흥분과 설레임을 갖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내 나라의 북쪽 땅끝 두만강 물줄기를 건너서 북한의 함경도 산천도 일별해 보고--

우리들 서울 연극인 일행 셋은 바로 어젯날(3월 15일) 오후에 이곳에 도착했었다. 우리의 연변방문 목적은 ‘연변연극단’(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연극단의 약칭)의 서울 초청공연 및 남북의 연극교류 문제 등을 논의하자는 데 있었다. 연변연극단은 5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중국 유일의 예술단체이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있는 극단 ‘고려극장’과 더불어 전세계에서는 단 두 개밖에 없는 ‘조선어극단’(모국어) 중의 하나이다. 그건 그렇고 연변 연극인 방미선 교수(연출가)의 친절한 안내와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남동쪽으로 룡정(龍井)을 향해 달려내려갔다. 때마침 50년래의 폭설로 얼마 전에 내린 50센티의 흰눈이 드넓은 산야와 마을들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이 눈밭이 다 녹자면 앞으로 4, 5월은 돼야 한다나? 시원하게 뚫린 자동차 도로는 한적하다시피 차량들도 드문드문 적고, 차갑고 맑디맑은 공기에 시원하고 푸른 하늘이 겨울 정취를 완연하게 한다. 오늘 기온은 영하 10도인데, 바람이 없어서 오히려 포근한 편이란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룡정 시가지를 어느새 지나고, 출발한 지 겨우 50여 분만에 목적지인 두만강가 ‘삼합해관’(三盒海關)에 닿았다. 우린 촉박한 일정 때문에 우선 먼저 두만강의 한 곳만을 찾아보고, 다시금 연길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역사 유적지도 몇 군데 둘러보기로 한 것. 해관은 중국식의 세관(稅關)이란 뜻인데, 두만강 7백 리에 걸쳐서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세관은 모두 7개란다. 고성리, 남평, 삽합, 개산툰, 도문, 훈춘시의 사타자 및 권하해관 등등. 삼합해관의 강 건너는 함경도 회령시. 강 위에 놓여 있는 허술한 콘크리트 다리는 화물 트럭 한 대가 겨우 건너갈 수 있는 너비에 길이는 불과 30여 미터. 우리가 다리 난간쪽으로 가까이 접근하자 경비병이 제지한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인민폐 10위안을 주면 다리 중간지점(경계선)까지 걸어가볼 수 있고 사진도 찍게 할 수가 있었다나?

“에게게- 여기가 두만강? 개천이네, 실개천! --“ 연출가 김성노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뱉는 말. 물론 여기서는 강의 상류쪽이라 그렇다 치고, 지금은 위쪽 무산 철광에서 흘러내리는 광산폐수와 갖가지 오염물 때문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전설로만 남아 있고 온통 검은 물뿐이란다. 그렇다면 오늘은 하얀 백설과 얼음장이 강물을 덮고 있어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다.

이곳 삼합에서부터 호랑이와 늑대, 산도적이 들끓는 오랑캐령을 넘고 록장(鹿場)과 달라자(智新)를 지나서 명동, 선바위, 룡정, 국자가(延吉)로 이어지는 노정은 험난한 “북간도 길”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 중의 하나였단다. 해서 지금이야 편한 세상이지만 그 길을 따라서 우리는 되돌아간다. 지신향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와 김약연선생기념비, 룡정 지명의 유래가 된 ‘룡두레 우물터’, 멀리 비암산의 일송정 풍경과 화룡시의 광활한 평강벌,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룡정시를 관통하는 해란강 등 -- 이 북간도의 젖줄 해란강은 연길의 부릉하통하와 만나고, 도문에 이르러서 두만강과 합류, 넓은 동해 바다로 흘러간다.

나는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지그시 눈 감고 우리의 저항시인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을 가만히 읊조려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란강아 말하라! 남북의 한민족과 땅덩어리가 평화통일이 이루질 그때 그날이 언제쯤인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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