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섬포크에듀필름페스티벌 ... |
판소리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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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포크에듀필름페스티벌 축가]
무섬마을 축가
작사/ 노경식 작창/ 강선숙
에헤 ~ 떼루떼루 떼루떼루 떼떼루 --
엊그제 좋은날 추석 한가위 보내고 가을바람 소슬하며 천고마비 호시절이라. 옛날의 정하유 선생 <농가월령가>를 빌어서 시절 이야기 한 대목을 좋을시고 풀어보니,
“팔월이라 중추되니 백로추분 절기로다 북두성 자로돌아 서천을 가리키니 신선한 조석기운 가을뜻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서 들리는구나 아침에 안개끼고 밤이면 이슬내려 백곡을 성실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들구경 돌아보니 힘들인 일 공생한다 백곡의 이삭패고 여물들어 고개숙여 서풍에 익은 빛은 황운이 일어난다 ~~“
(아니리) 자아 ~ 오늘 시방 만장하신 선남선녀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인고 하니 <무섬포크 에듀필름 페스티벌>이라. 무시기 ‘무섬포크 에듀필름 --’? 그 뜻이 장히 어렵소, 잉. 무섬이란 말은 이곳 무섬마을을 가리키는 것일시 분명허나 ‘에듀’니 ‘필름’이니 ‘페스티벌’은 또 무신 뜻이랑가? 호호 --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과 동양대학교가 주관하되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영주시 등등 기관 단체들이 후원을 하고, 우리네 무섬마을의 옛 전통과 역사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고자 갖가지 문화행사를 펼치는디, 그 목적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무섬마을’을 대상으로 하여 전통문화와 공연영상이 결합된 창의적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지향하는 장소성 곤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특성의 관광진흥 문화산업을 이룩하고자 함입니다요. --
영주시는 예로부터 ‘선비문화’의 탯자리라 아름답고 수려한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명승고적도 즐비하고 역사의 향기 빛나니라. 민족의 영산 소백산맥, 순흥읍내리 벽화고분 의상대사의 화엄종찰 부석사와 무량수전 조선팔도 첫 번째로 사액서원 소수서원. 부석사에 얽혀있는 의상대사 젊은 스님과 당나라 선묘낭자와의 애틋한 사랑노래는 천년을 흘러가도 오히려 창연하구나. 명종임금이 내려주신 소수서원은 사설대학교 주세붕의 백운동서원을 풍기군수 퇴계이황이 나랏님께 건의하여 최초의 사액서원 되었느니. 수신제가의 ‘선비촌’마을과 선비문화 및 청소년수련관, 풍기인삼과 풍기온천장, 손꼽아 셀수도 없구랴. 단종임금의 한이 서린 막내삼촌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의 슬프고 억울한 사연은 붉은 피가 죽계천을 십리허에 ‘피끝동네’ 되었다네!
(아니리) 그 속에서 남쪽으로 또 하나의 전통마을 문수면 수도리(水島里)가 자리잡고 있으니, 이름하여 ‘무섬마을’이라. “무섬”은 ‘물 위에 떠있는 섬’이란 뜻이니까, 현재 ‘수도리’의 우리 말 옛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섬마을의 지세는 시방 보시다시피, 저-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 냇물과 태백산에서 시작된 내성천(內城川) 둘이 서로 합수되는데, 동네 뒤쪽에서 울울창창 청산에 막혀서 강물이 돌고돌아 물돌이동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육지의 섬처럼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예천 지역의 ‘회룡’(回龍) 마을과 안동의 ‘하회동’(河回洞)처럼. 여기 무섬마을의 내력은 이렇습지요. 지난 17세기 후반, 거금 350년 전에 반남박씨 박수(1642-1729) ‘수’자 이름의 어르신이 입향조가 되어 이 섬에 들어와 가지고 동네를 일으켜 ‘만죽재’(晩竹齋)를 짓고, 이어서 손주사위 선성김씨 젊은 신랑이 장가들어 건너와서 두 집안이 집성촌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에 감싸여 자연의 정취와 전통의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때 묻지않고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는 셈입니다. 소설가 정한숙님의 단편소설 <古家>와, 청록파 시인 조지훈님의 시 <별리> 같은 문학작품은 바로 이곳 무섬마을의 창작배경이기도 하지요. --
경사났네 경사났네 무섬마을에 경사났네 오늘밤 개막식을 필두로 하여 다채로운 주요행사를 요리저리 볼작시면 세미나와 토크콘서트 청소년특강 한여름반의 꿈, 무용뮤지컬 갈라쇼에 예술인과의 밤과 전통혼례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아슬아슬 상여굿놀이 재미나게 구경하고 신명나게 체험하고 볼것많고 놀 것도 많고 많기도 많구나!
(아니리) 만장하신 여러분! 저쪽에 강물에 떠있는, 구불구불 외나무다리 보이시죠? 지난 1983년도에 길이 180미터, 너비 5. 5미터 짜리 현대식 콘크리트의 수도교 돌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저 외나무다리가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길이요 통로였다는군요. 지난 350년 동안 외부세계와 무섬마을을 이어줬던 유일한 숨통길 외나무다리! 동네 어린이들이 책가방 메고 학교 가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외나무다리 ~~
외나무다리 건너가세 구불구불 외나무다리 장가가는 새신랑도 시집오는 새색시도 아슬아슬 이 다리를 기쁨으로 건넜다네. 서울길 대처를 찾아서 큰아들도 건너가고 늙은 부모 모시고자 효도길도 이 다리 잔혹한 일제 시절 징병징용 끌려나가고 백골되어 돌아왔네 이 다리를 건너서. 6.25전쟁 싸움터에 출정길도 이 다리 승리의 깃발들고 그리운 집 돌아왔네. 황천길 꽃상여도 외나무다리 건너서가니 꽃상여를 타고서 어노어노 어디를 가시는가? 가고오는 외나무다리 무섬마을의 생명줄일세!
에헤 ~ 떼루떼루 떼루떼루 떼떼루 --
비나이다 비나이다 무섬마을 신령님께 비나이다. ‘무섬포크 에듀필름 페스티벌’ 행사 모쪼록 대성공을 거두시고, 관광 나오신 선남선녀 참여하고 수고 많으신 스탭진들 모두모두 건승하시고 가정의 평안과 행복 오래오래 길이 누리소서. 무섬마을 신령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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