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선생- 연극이 삶 자체... |
추모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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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노경식 추모사>
연극이 삶 자체였던 ‘영원한 햄릿’
선생님, 김동원 선생님!
뭣이 어찌 그리 바쁘셔서 하늘나라로 자리를 총총히 옮기셨습니까. 참으로 애달프고 서럽습니다. 연극인 저희들 곁에 조금만 더 지켜 계시면서, 오늘처럼 혼란스런 연극활동에 따끔하게 일치도 놓고, 꾸중도 좀 하고, 바람직한 방향도 가르쳐 주시면 얼마나 좋을 텐데 ---- 선생님의 연극철학은 철저한 리얼리즘 신봉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또 연극예술에 관해서는 종교적인 경외와 신념의 소유자셨습니다. 해서 그런지 오늘의 퓨전적이고 시끄러운(?) 연극을 객석에서 보시면 으당 하시는 말씀. “이봐 노형? 우린 저런 시끄러운 연극은 싫어요. 연극예술은 말야, 경건하고 엄숙해야만 돼! 그러고 인생이 연극 속에 녹아서 살아있어야 돼요. 허허.” 늘상 존경하는 선생님과 불초 나의 연극인연은 벌써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그때 선생님께선 새로 지은 장충동 대극장에서 국립극단 공연의 <징비록>(노경식 작/ 이해랑 연출, 1975)에서 주인공으로 서애 유성룡 대감 역을 맡으셨습니다. 언제나 먼 발치에서만 뵙던 연극계 대가 이해랑과 김동원 두 분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실로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 뛰는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선생님과의 인연은 <흑하>(국립극단, 1978) 공연 때 러시군 총사령관 역할 및 <불타는 여울>(국립극단, 1984)에서의 의병대장 등으로 이졌습니다.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별로 많은 말씀은 아니하십니다. 간단히 그저 “왔어?”하시면서 빙그레 온화한 미소와 조용조용 다정한 목소리뿐. 한 치의 흐뜨러짐도 없이 선생님의 그 단아한 자세와 멋쟁이 옷매무새를 인제는 뵈올 수가 없군요. 선생님은 연극예술가로서 그 품위를 지키고, 그 예술과 멋을 알며, 또한 후배 연극인들에게는 연극인의 상징이요 인생살이의 큰 귀감이셨습니다.
선생님, 김동원 선생님!
‘영원한 햄릿’ ‘한국의 햄릿’ ‘영국신사로 살다간 연극배우’ 등등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언론마다 다투어 보도하면서 진정으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관 뚜껑을 닫아봐야 그 가치를 안다더니 정녕 빈말이 아니군요. 김 선생님은 ‘한국의 영원한 연극배우’입니다. 앞서 가신 이해랑 선생님과의 금란지교는 온세상 다 아는 일. 벌써 17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가신 이해랑 선생께서, “동혁(김동원 선생 본명)이, 이봐? 어서 올라와. 많이많이 보고 싶었어요! 내가 동혁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두 분 선생님이 하늘나라에서 두 손 맞잡고 다정하게 눈웃음 짓는 모습이 불초 제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김동원 선생님, 편히 영면하소서.
[ <한겨레신문> 2006. 5. 1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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