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젊은 엄마' |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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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젊은 엄마- 南原 '용중동창회지'
노 경 식 (극작가)
이건 실화입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아르메니아’ 땅을 찾아보면, 소(小)아시아와 카스피해(海)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지역의 일반적인 명칭으로서 그렇게 부르는 곳이지요. 마치 ‘전라도 지방’ 또는 ‘호남지방’이라고 남들이 부르듯이-- 사랑하는 후배친구 여러분, 공부삼아서 손가락으로 더듬어 한번쯤 찾아보실래요?
그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어느날 갑자기 청천벽력으로 무서운 지진이 한순간에 발생했더랍니다. 해서 그곳의 수많은 집들과 아름다운 건물 및 상가들이 한꺼번에 모조리 무너져 내렸을 때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한 토막. ---- (이 일화는 본인의 인터넷에 들어온 어떤 이의 E-메일을 참고,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그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아비규환의 난리통에, 그 가운데는 스물 여섯 살의 젊은 엄마 스잔나 펫로시안과 그녀의 네 살 된 딸애기 가야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엾은 두 모녀는 처참하게 폐허로 변해 버린 무너진 집 속에 갇혀서, 밖으로부터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 깜깜하고 밀폐된 작은 집 속에 갇혀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 모녀에게는 시나부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감뿐---- 그네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서움과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시시각각 시간이 흐를수록 철 모르는 어린 딸 가야니는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쳐서 계속 울어댔습니다. 이때 젊은 엄마가 사랑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젊은 스잔나는 곰곰 생각한 끝에 한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애,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스잔나는 지친 몸을 움직여 더듬더듬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장님처럼 이리저리 주위를 더듬어서, 한쪽에 널려있는 부서진 창틀의 유리창 조각을 찾아냈습니다. 그녀는 깨어진 작은 유리 조각 한 개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시퍼렇고 날카로운 그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쿡- 찔렀습니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는 따뜻한 붉은 피가 솟아올랐습니다. 스잔나는 그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지쳐서 쓰러져 있는 어린 딸에게 먹였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러고 또 세 방울---- 젊은 엄마 스잔나는 그녀의 어린 딸이 지쳐서 울 때마다 똑같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베어서, 자신의 사랑하는 딸의 입술을 매번 그렇게 적셔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은 매몰된 지 무려 14일만에 구조되었습니다. 구조대가 극적으로 그네들을 구출해냈을 때, 젊은 스잔나의 손가락 열 개는 모조리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손의 열 손가락 중에 어느 하나도 성한 것 없이, 때 묻은 흙과 먼지와 온통 피범벅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성스럽고 위대한 사랑인가 합니다. 불가(佛家)의 <부모은중경>에 보면 어머니는 출산 때 3말 8되의 피를 쏟는가 하면, 8섬 4말의 젖을 먹여서 그 자식새끼를 기른다고 합니다. 또한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봉사합니다. 가족의 안락과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서는 1년에 약 7천2백 개의 음식 그릇을 닦는다고도 합니다. 무릇 어머니가 자식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과 봉사와 희생은 하늘 같아 끝이 없습니다. (‘欲報之德 昊天罔極’)
여기서 나는 효(孝)란 인륜의 제일의(第一義)요 백행(百行)의 으뜸이라는 고리타분한(?) 옛 성현의 가르침을 새삼 꺼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어버이 사랑이란 양(洋)의 동서(東西)와 때의 고금(古今)이 언제나 꼭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들이 숨쉬는 공기나 바람과 같아서 그 은덕의 고마움을 잊고서 지낼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러고 또한 그런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우리가 비로소 알고 깨닫고 느낄 만 하면, 어머니는 그땐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늙고 아파서 병상에 누워 계시거나, 아니면 멀리멀리 저세상으로 떠나 계시기가 일쑤인 것입니다. 후배친구들 여러분, 더 늦어지기 전에 어찌 하시렵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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