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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백성이여, 일어나라' 노랫말
 
2003년 “9월의 문화인물 四溟堂 惟政”
강원도 고성군 기념행사 ‘국악발표회’에서-


“백성이여 일어나라“

가 사: 노 경 식
작 창: 박 정 욱

일 시: 2003년 9월 16일 (화) 13:00~
장 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고성 문화의 집”

주 최: 강원도 고성군
주 관: (사) 사명당기념사업회
공 연: (사)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음 향] 산새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은은히 평화의 범종소리, 그러고 목탁과 염불소리 한동안 길게.
이어 둥둥 둥- 다급해진 북소리와 함께,
천둥벽력 치듯이 왜적의 조총소리 탕탕 탕! --

[詞]
혜 구: 오매- 큰시님, 큰일 났습니다요. 유점사 큰절이 온통 난장판입니다. 절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소서! 재앙입니다요, 재앙, 큰시님--
해 설: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산문 밖 풀숲에서, 난데없이 젊디젊은 혜구스님이 불쑥 뛰쳐나와서, 사명대사 큰스님의 장삼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혜구는 사명당의 상좌승으로, 벌벌 떨면서 사색이 되어 숨 넘어가는 소리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사명당: 허허- 아니 너 요놈, 혜구스님 아니냐? 큰절에 재앙이라니! 무신, 부처님 법당에 불이라도 나고, 어디에 벼락이라도 쳤드란말이냐?
해 설: 때에 사명스님께서는 표훈사(表訓寺)라는 작은 절에 계시는 중에, 때아닌 왜군떼가 평화스런 금강산에도 출몰했다는 소문을 접하고, 황급히 큰절로 돌아오시는 길이었습지요. 해동조선의 금강산 하면, 옛부터 천하 제일의 아름다운 명승지 아니겠습니까?

[唱]
혜 구: 큰시님~ 아이고매, 말씀 마소서!
천하에 흉악무도한 저놈- 왜적떼가
불시에 우리 유점사에 들이닥쳐서
법당을 짓밟고 공양미를 도적질하고
온갖 분탕질로 절간에 난리가 났습니다요.

[詞]
사명당: 나무관세음보살-- 이런 횡액이 있나!
혜 구: 큰시님, 아예, 안으로 들어가실 생각일랑 마소서. 큰 봉변을 당하실까 두렵습니다. 시방 절 식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숨어 버렸고, 미처 도망나오지 못한 스님네만 붙잡혀서 큰 곤욕을 당하고 있습지요. 그러니 지금은 사나운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격입니다. 큰시님, 어서 싸게싸게 숲속으로 숨으십시다요, 우리들도 ----

[唱]
사명당: 어허- 요놈, 혜구스님아 듣거라
불제자가 할일이란 생사윤회를 해탈하여
불생불멸 부처님의 도리를 깨우치는 것.
대자대비의 보살심으로 인연없는 중생도 건져내야 하거늘
하물며 구도의 인연 있어 한솥밥 같이 먹고
함께 앉아서 공부하던 도반들이 죽어가는데,
우두망찰 어찌 하여 모른 체할 수 있더란 말이냐.

[詞]
사명당: 자- 이 바지 가랭이 놓고, 날 따라 오너라. 내 절간 찾아서, 내 집으로 들어가는디, 어느 놈이 누가 말려?
해 설: 사명스님은 주장자를 곧추세우고, 산문을 바라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놓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짐작했던 대로, 대가람 유점사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지요.

[唱]
사명당: (탄식하여) 애고- 이 불학무도한 왜적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부처님 도량에서,
요 무신 행패이며 패악질인가
조용한 절간에서 용맹정진은 못할망정
신성한 법당을 유린하고 죄 없는 불자들을 욕보이다니!
고금천지 전고에도 없는 일
내가 알지 못하노라 나는 듣지를 못했노라

[詞]
해 설: 큰스님이 성큼 경내로 들어가서 낌새를 휘이- 둘러보자니까,
한쪽엔 파수 보는 왜군들이 늘어서 있었고
나머지 왜병들은 여그저그 곳곳에서
제멋대로 앉아있거나, 혹은 흙바닥에 길게 누워서
쫑알쫑알 씨부렁거리기도 하며,
그러고 창과 칼이며, 신식무기 조총들도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한 놈은 남들이야 보든지 말든지
지놈 자지를 드러내놓은 채 오줌발을 질질 갈겨대면서
히뜩뻔득 돌아댕기는 것이었습니다그려.
그리고 왜병에게 붙잡힌 스님네 20여 명도
오랏줄에 굴비 엮듯 씨래기 엮듯이 묶여서
저만큼 한쪽 구석에다 내팽개처져 있었습지요.
그 스님들은 잔뜩 주눅이 들고 겁먹은 몰골로
눈물과 한숨만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어허~ 기도 안찰 일이다!
사명스님은 짐짓 모른 체 외면하고는,
때마침 왜군 대장 서너 놈이 버티고 있는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우선 부처님 삼존불 앞으로 나아가서 향불을 사르고
공손히 엎드려 큰절부터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왜장들 앞으로 걸어가서 이와 같이 묻는 것이었습니다요.

사명당: 그대들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가?
왜장 1: 지난 4월달에 부산포에 상륙하였다. 지금 일본군의 세력은 20만이 넘는 대군이다. 그대는 두렵지 않는가?
왜장 2: 하하하. 보아하니, 이곳 유점사는 대사찰이다. 절안에 있는 금은보화를 모조리 내놓아라. 불연이면 모조리 죽이고, 절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해 설: 허허, 때에 우리 사명당께서는 일본말이 통했느냐고요? 물론 불가한 일이었습지요. 해서, 그 유명한 “적장과의 담판(談判)“으로 필담(筆談)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더랬습니다. 여기서 필담이란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라, 흰종이에다 붓을 들고 한문글자로 글을 써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말함입니다.

[唱]
사명당: 그대들아, 똑똑히 들을지어다
우리 조선은 본시 금과 은을 보물로 삼지 않는다
다만 먹고 입는 곡식이나 옷베를 중히 여길 뿐.
금은 같은 값진 보물은 나라 안에서도 흔치 않은 물건인데
세상사를 등진 산중 절간에 있을 턱이 있나?
그러고 또 하나 너희들이 모르는 것이 있음이다
산중에서 도를 닦고 부처님께 공양하며
산나물 죽순과 초의(草衣)로써 살아가고,
혹은 마을에 내려가 탁발하여 걸식으로 살아가는데
어찌 금은 같은 걸 보물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저- 행랑 밑에 묶여있는 스님네를 잘 보아라
오직 백팔염주 목에다 걸고
바리때, 목탁 하나로 천산만락을 떠돌아댕기며
식은밥 한술씩 얻어서 끼니 때우는 불자들이라네.
그런데도 금은보화를 얻기 위해서
비록 그대들이 협박하여
몸뚱이를 갈고 뼈마디를 가루로 만든다한들
어느 것 한가지도 내놓을 것이 없구나
어림없다 불가하오, 그 어느 한구석에서
한 톨의 보물인들 나올 수가 있겠는가!

[詞]
사명당: 내 말뜻을 알아들으시는가?
그러니 원컨대, 죄 없는 스님들을 풀어주기 바라노라 ----

해 설: 사명스님의 당당한 설복에,
그날의 유점사를 점령했던 왜군들은 서둘러 떠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산문 밖 입구에다 방 하나를 붙여놓기를,
‘이곳 사찰은 불도를 아는 고승이 계시는 곳이니
일본국의 여러 병사들은 출입을 삼가토록 하라!‘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명스님의 위력에 의해서였든지 간에,
흉포한 왜적의 칼날에서 평온을 되찾은 유점사였으나
사명당의 마음은 울적하고 편치가 않았습니다.

[唱]
사명당: 승려의 몸뚱이라
창칼을 잡지는 못하나
하늘에 비낀 충분이야 어찌 하리.
신무로써 능히 왜구를 막아내지 못하고
고승이 마군을 두렵게 할 힘도 없으니,
비 내리는 공산의 적막 속에서
시름에 찬 생각사로
이내 몸뚱이에 홧병만 얻었네.

[詞}
해 설: 사명스님은 그 옛날 ‘을묘왜변’ 때에 산속에 숨어사는 스님네의 힘 없음을 탄식하는 허응당 보우(普雨)대사님의 시 한 수를 떠올리며, 강원도의 간성과 고성군이 있는 영동 땅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뒤따르는 시자승 혜구스님은 조바심이 나서,

혜 구: 큰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아니- 난리가 일어나면 산속으로 숨는 것이 상지상책인디, 불을 지고 섶으로 든다고, 오히려 싸움터로 찾아가다니요? 시방 저- 산 아래 동네에서는 미친 개떼들이 날뛰고 있는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唱]
사명당: 허튼 소리를 말거라. 중생의 아픔이 곧 부처님의 아픔이요 고통이란다. 중생은 곧 부처님이시니, 중생이 없으면 부처님이 어디에 가 계실까?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니라.
혜 구: 우리 같이 힘 없는 중들이 흉악한 칼날을 어찌 막습니까요? 중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요- 손에 든 목탁과 염주알뿐인디--
사명당: 옳거니! 니놈 말이 딱- 맞구나. 허허.
혜 구: 그러고 여느 때와는 달라서 수십만 왜병이 동해 바다를 건너 한꺼번에 몰려왔다는 풍문이옵고, 나랏님 계시는 한양성도 오뉴월 장마에 기왓장 깨지고 토담이 무너지듯이 와르르~, 저- 서쪽에 있는 평양성도 엊그제 벌써 떨어지고, 임금님도 또한 멀리멀리 꽁꽁 숨어 버리고 없다는 등등 갖은 소문이 흉흉합니다요. 그뿐입니까? 마을을 지키는 목민관이나 군병들도 제 혼자서만 살겠다고 죄다 흩어져서 도망가 버렸고요----

[詞]
해 설: 사명당께서는 산승의 몸이라, 임진년 난리를 뒤늦게사 알게 되었습지요. 때는 선조대왕 25년, 서기로는 1592년 유월 초순께- 바야흐로 짙푸르고 싱싱한 녹음으로 뒤덮인 금강산은 골짜기마다 청아한 물소리에, 뭇산새들이 한껏 목소리를 뽐내며 지저귀고, 울긋불긋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여름꽃들이 시원한 산바람을 타고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선경이 아니겠습니까. 허나 산 아래쪽의 세상살이는 사뭇 달랐습니다그려. 그러니까 일본 관백 도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침략군 25만여 명이 부산포에 닿은 것이 지난 4월달 열나흗날의 일인지라, 그날로부터 7년대전의 국난이 시작되었던 것이옳습니다. 사명스님이 강원도의 통천 간성 고성 주문진 등 동해안 일대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전쟁의 참화는 목불인견이었습니다. 마을마다 온동네가 불타서 잿더미로 변하고 곳곳에 널려있는 생주검들 하며, 배 고파 울부짖고 다치고 피 흘리는 힘 없는 아녀자들과 노인네들 ---- 사명당은 왜장들이 머물고 있는 군막 속으로 다짜곳짜 찾아들어가서, 적장담판으로 이와 같이 설유(說諭)하고 타일렀습니다.

[唱]
사명당: 그대들 적장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우리 불가에서 말하는 숙세의 인연인가 하노라. 칼과 총 같은 병장기는 사람을 해롭게 다치는 흉한 물건인데, 양쪽이 서로 상대하여 싸울 때는 부득이 그것을 사용해서 죽이기도 하고 해하기도 하느니. 허나 싸움을 한번 그치고 나면, 적군끼리라도 더 이상은 총칼을 쓰지 않는 것이 병법이다. 군대에는 군율이라는 것이 있고, 언제나 죄 없는 양민에게 해악이 없도록 하는 것을, 예로부터 “명장”이라 일컫고, “의려(義旅)”라고까지 칭송하는 법이다. 그런데도 그대의 군대는 함부로 백성을 살상하고, 이르는 곳마다 재물을 빼앗고 불질러서 그 행패가 자심하니, 힘 없는 백성이야 당장은 대항치 못하고 죽음을 피해서 도망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철천지원한을 어찌 하리! 그토록 크나큰 원한을 쌓고서야 무슨 승리를 바랄 수가 있겠는가? 그대들이 지금 양민을 살상하고 핍박하느니 차라리 보호하고 위안을 주어 민심을 얻는다면, 너희들이 승리한다 해도 여유가 생길 것이고, 또한 승리하지 못하고 패전한다 해도 영원한 원수를 맺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자비심을 발휘하고 인의를 행하여, 선량한 백성을 다치지 아니하기를 바라노라.

[詞]
모 두: 사명당 스님 만세! 사명스님 만세! 사명스님 만세 만세, 천만세! ~
해 설: 사명스님의 필담 글을 읽어내려 가던 왜장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는 빛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군사를 거두고 마을을 떠나가니, 고성군의 아홉 개 고을이 죽음을 면한 것은 오로지 우리 큰스님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와 노력의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한양성과 평양성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임금님이 서쪽으로 파천하였다는 서글픈 소식을 듣고는, 사명당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와 수치심으로 몸을 떨었습지요. ‘오호라, 왜적의 말발굽 아래 나라는 결딴나고, 중생이 어육이 되는구나!--’

[唱]
합 창: (비장하여) 나랏님 깃발이 서쪽으로 가시니
한양성 대궐이 텅 비었고
문무백관은 옷을 입은 채
머나 먼 자갈길을 헤매인다.
요동 땅에 흰구름 일어나니
저기가 어느 곳이뇨?
산 속의 늙은 중이
머리를 돌이키매
흐르는 눈물도 한량없어라.

[詞]
혜 구: 큰스님, 어디로 가실 요량입니까? 벌써 해도 뉘엿뉘엿 황혼입니다요.
사명당: 여기서 가까운 절이 어느 곳이더냐?
혜 구: 예, 저- 골짜기 너머가 건봉사(乾鳳寺) 큰절인가 합니다요.
사명당: 그래, 그래애.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도록 하자. --

해 설: 사명당 유정(惟政)스님은 속성은 풍천 임씨(豊川任氏)요 자는 이환(離幻)이며 이름은 응규(應奎)인데, 경상도 밀양 고을의 한미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10여 세 소년시절에 조실부모 하고, 황악산 직지사(直持寺)에 들어가 신묵화상에게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스님은 타고난 머리가 영특하고, 성품 또한 자애로웠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문의 중망을 한몸에 받았으며, 젊은 나이 18세에 나라에서 치르는 선과에 당당히 급제하고, 서산대사 휴정(休靜) 큰스님에게서 법맥을 이어받았던 것입니다. 지금 스님의 나이는 마흔아홉 장년의 몸이셨습니다. 사명스님은 시자승 혜구와 함께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따라서, 마침내 건봉사 입구의 부도밭과 불이문을 지나고 능파교(凌波橋)를 건너서, 대웅전 큰법당에 다다랐습니다. 사명당과 혜구스님은 부처님 앞에 꿇어 엎드려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唱]
사명당: 나무 나무관세음보살~ 비나이다 비나이다, 대자대비 부처님이시여!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과 보살님께 비나이다. 불초 무명(無明) 소승에게 길을 인도하고, 가피를 내려주옵소서. 오호, 통재라! 나랏님은 서쪽으로 몽진하고 왜적의 칼날이 조선8도에 가득차매, 안팎으로 국록을 먹고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산꿩이나 토끼처럼 모조리 도망가고, 적들은 마음대로 나라와 백성을 짓밟고 있습니다. 저 사명으로 말하면, 한평생 불보살님을 모시고 목탁 두드리고 염불만 외우던 어리석은 불자이옵니다. 온나라와 임금님이 망하고 중생이 어육이 되는 마당에, 소승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저같이 아무런 힘 없고 재주도 없는 산승인 주제에, 왜적의 저- 시퍼런 칼날을 어찌 대적하리까. 사바세계의 도탄에 빠진 중생을 내가 어찌 구하며, 무너진 2백 년 사직은 어찌 하여 다시 세울 수 있으리까. 부처님이시여, 보살님이여, 미천하고 보잘것 없는 소승 사명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바른 길을 가르쳐 주소서!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詞]
해 설: 건봉사 절은 신라 법흥왕 때 아도(阿道)스님이 창건하여 ‘원각사’(園覺寺)라 칭하였는데, 고려왕조 초기에 도선대사가 ‘서봉사’(西鳳寺)로 이름을 바꾸었고, 1358년 공민왕 시절에는 혜근 나옹(惠勤懶翁) 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여 다시금 ‘건봉사‘로 개칭하였습니다. 오늘날에 우리가 보는 건봉사의 사세는, 지금은 주객이 뒤바뀌어 저- 설악산 신흥사(神興寺)의 한 낱 말사로서 작은 절에 지나지 않으나, 임란시절 그당시에는 오히려 신흥사와 낙산사, 백담사 등등 인근의 수많은 말사를 거느린 본사로서, 당당한 큰절이었던 모양올시다. 그러니까 천년고찰로서 내려오는 동안에, 여러 차례의 화재에다가, 특히나 지난 50년대 6.25의 한국전쟁 때는 온 절이 불타 버려서, “사찰 전소”라는 비운의 참화를 겪게 되었습지요. 자- 그건 그렇고, 사명당 스님 얘기를 더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무렵 사명스님은 의승병을 일으킬 만반준비를 서두르고 계셨습니다.

스님 1: 큰스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놈들은 함경도 저- 회령 땅까지 짓밟았다고 하옵니다.
사명당: 으음- 가물가물 풍전등화로구나. 하루 빨리, 우리들도 기병하도록 하자! 기허당 영규(騎虛靈圭)가 공주 땅에서 승병을 일으키고, 중봉 조헌(重峯 趙憲)선생과 합세해서 청주성을 회복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인 게야.
스님 1: 그 영규스님이라면, 큰스님과는 같은 도반으로서, 서산대사님의 제자들 아니겠습니까?
사명당: 두 말 하면 잔소리. 아암- 잘 알다마다. 허허----
해 설: 그러자, 한 스님네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옵니다.
스님 2: 사명당스님, 도체찰사 유성룡(西厓 柳成龍) 대감의 “통문”(通文)입니다요. 전국 방방곡곡에서 근왕병(勤王兵)을 하루 속히 궐기하라는----
사명당: 뭣이라고? 서애 대감 유 정승님의 통문이라--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해 설: 이때 또한, 시자승 혜구가 다른 스님을 모시고 총총히 들어옵니다.
혜 구: 스님 큰스님, 저- 묘향산에서 스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요.
사명당: 뭐, 묘향산에서?

[唱]
스님 3: (손에 “격문”을 들고) 사명당 유정스님 듣조시오!
소승은 묘향산 보현사에 살고 있는 도반이온데,
서산 노스님의 명을 받들고 예까지 찾아왔습니다. 지금 묘향산 노스님께서는 사명당스님을 찾고 계시오. 자- 받으소서, 우리 서산대사 “격문“(檄文)을--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 서산대사님의 “격문”이 예 있습니다.

[詞]
사명당: (받아서 펼쳐들며) 허허, 이런 감복할 일이 있나. 은사스님께서 불초 소승을 찾으신다니. 서산 노스님이 간밤 꿈속에 보이시더니, 미상불 헛일이 아니었구나! -- (명령하여) 여봐라, 혜구스님아 듣거라. 너는 시방 당장 범종각으로 올라가서, 대종을 울려라! 크게 크게 범종을 쳐라! 삼천대천세계에 널리널리 알려주고, 지옥을 여의고 삼계를 벗어나, 원컨대 모든 중생이 깨달음 얻어서 성불할 수 있도록~
소 리: 둥, 둥둥-- (범종 소리)

[唱]
사명당: 금강산 스님네들이여, 내 말씀을 들으시오! 나라의 국운이 풍전등화요, 백성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서있도다. 흉악한 저- 왜적의 칼날 아래 선량한 중생은 어육이 되고, 길가에는 가련한 송장들이 베개 베고 서로서로 누워있네. 우리가 부처님 모시고 수행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와 백성의 하해 같은 은혜일진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 어찌 수수방관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고요한 곳에서 닦은 것은 분주한 곳에서 쓰자는 것이며, 편안할 때에 익힌 것은 급박할 때 쓰자는 것이라. 풀잎에 이슬이라 초개 같은 목숨이 죽는 것이 두렵고, 한목숨 살리고자 다른 이의 죽음을 보고만 있다면, 우리가 어찌 불제자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저- 묘향산에서는 서산대사 노스님이 80 고령으로 산에서 내려오셨고, 충청도에선 영규 스님이, 전라도에서는 처영, 황해도에서 의엄, 경상도에선 해안과 신열 스님이, 먹물장삼 걷어부치고 벌떼처럼 일어났소. 사람이 은혜를 몰라도 사람이 아니요, 알고서도 갚지 않음도 또한 사람이 아니거니와, 그 은혜를 갚을 기회와 때를 놓치고서 제대로 갚지 못하는 것도 사람이 아니라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나라의 은혜와 부처님 은혜와 중생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그때입니다. 금강산에 있는 불제자 여러분, 피가 끓고 의분이 있는 스님네는 앞으로 나오시오. 불초 나 사명이 나라를 돕고 무고한 창생을 구하고자 의병을 일으키니, 아무 주저할 것도 없고 뒷꽁무니 빼서 물러날 일도 아니올시다. 대저 늙고 병든 자는 그대로 절에 남아서 부처님께 향을 사루어 신조(神助)를 축원하고, 나머지 힘 있고 혈기 방장한 중들은 모두모두 일어나시오. 이 한목숨 아까울 것 없소이다. 지금 당장 나를 따라서 함께 나아갑시다!

[詞]
사명당: 백성이여, 일어납시다! 총궐기 합시다!
모 두: (함성) ‘옳소, 왜적을 무찌르자!’
‘왜병을 무찌르고, 나라의 원수를 갚자!’
‘쳐부시자, 왜놈들!’
‘나아가자, 앞으로!’ ----

해 설: 산중에서 나물 먹고 죽순이나 먹는 스님네들이 일어났으니, 그 의리와 충성심이 붉은 해를 꿰뚫으며, 가상하고 가상하도다! 사명스님은 의승군 2백여 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나아가, 평양성 위에 서산대사가 계시는 순흥 법흥사(法興寺)에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었습지요. 그리하여 도합 2천여 명의 의승병을 이끌고 대동강 남쪽에서 왜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게릴라전을 펼치고, 평양성 탈환작전에 큰공을 세웠으며, 한양성 밖 노원평과 수락산 전투에서도 빛나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한양을 수복하고 남쪽으로 경상도 땅에 내려가서는, 농사를 지어서 군량미와 백성을 구휼할 양식을 마련하는 한편, 여러 곳의 산성을 수축하고, 총포와 화약, 총칼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울산 서생포에 있는 왜군 장수 가또오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세 차례나 만나서 적정을 탐지하고, 그네들과 종전문제를 논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후처리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당시에 천하를 통일했던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직접 만나 강화문제를 성사시키고, 포로로 끌려갔던 동포 수천 명을 석방시켜 데려오기도 하고, 그후로 조선통신사의 길을 닦아 2백60여 년 동안 한일간 평화수호의 초석을 닦았던 것이올시다. 우리의 사명당 큰스님은 미증유의 임진국난을 당하여 나라와 민족을 살려낸 호국성사(護國聖師)이십니다. 한 낱 불자의 몸으로 당신은 보살사상의 실천자이며, 전쟁터에서는 군사전략가로서, 그리고 한중일 국제관계에서는 탁월하고 위대한 한 외교관으로서 그 선구자적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또한 우리 큰스님께서 돌아오실 때는, 그들이 훔쳐서 몰래 도적질해 갔던 부처님의 진신사리도 12과(顆)를 되찾아왔습지요. 지금 시방 오늘날에, 저기- 건봉사 절 ‘염불원’(念佛院)에 있는 영골 치아사리 다섯 과(顆) 하며, 그리고 ‘적멸보궁’ 속에 봉안되어 있는 영골 세 개가 바로 그 귀중한 성물(聖物)들이 올시다. 나무관세음보살~
자- 이젠 그 옛날에 사명당 큰스님께서, 만경창파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떠나실 적에, 조정대신 지봉(芝峰 李&#26220;光) 선생이 지은 전별시 한 수를 가지고 짧은 공연을 마칠까 합니다.

[唱]
모 두: (합창- 장엄하게)
훌륭한 세상(盛世)에 명장도 많은데
빼어난 공적은 홀로
그대여 늙은 스님 대사로다
뱃머리는 현해탄 바다를 향하고
말솜씨 혀끝은 육생(陸生)의 언변을 닮았도다.
변덕스럽고 간사함에
섬 오랑캐는 끝이 없는데
화친하는 일이 위태로울까 걱정이 되네
시방 내 허리에 차고 있는
유생(儒生)의 긴 칼 한 자루는
사내 대장부가 부끄러워라. ----

[뒷풀이- 흥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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