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경기도 부천연극인들이 하는 공연작품 “조선의 마음”을 심사차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朝鮮의 마음>은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 1898-1961)의 대표적인 詩作品名에서 빌어온 것. 수주 선생이라면,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로 우리들에겐 보다 친숙하고 유명한 <論介>의 시인인데,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이었습니다. 수주 선생은 일제하의 민족시인이자 언론인 영문학자로서 고결한 선비정신을 지녔던 분으로, 잘 알다시피 <酩酊40년>의 주옥 같은 글이 더욱 인구에 회자되었던 대주호(大酒豪)이기도 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학문과 인격과 재능에 있어 일세를 주름잡았던 이른바 “3변(三卞)”의 막내둥이로, 장형님이 영만(榮晩), 중씨(仲氏)는 영태(榮泰)입니다. 맏형님 영만 선생은 한학과 영문학의 대가로 국학자이셨으며, 가운데형 영태 선생 또한 한국전쟁 중에 외무부장관으로 우리나라 국제외교의 기틀을 마련했던 어른입니다. 그들 3형제는 현재의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있는 선산 묘소에 나란히 묻혀 있으므로, 요즘 유행하는 향토문화 개발(?)의 차원에서 꾸며진 연극.----
수주 선생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지 <신가정>(新家庭- 동아일보사 발행)의 편집장으로 재직했던 1936년 시절---- 그 당시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왕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 신문이 무기정간을 당하는 등 혼란 속에, 월간잡지 <신가정>도 권두화보를 꾸미게 되었다. 우리 손 선수의 뛰박질하는 그 당당하고(?) 장한 모습을 화보로-- 그런데 편집장 수주는, 손기정 선수의 상반신 부분을 싹뚝- 잘라내 버리고, 대신에 얼굴 모습도 없이 그의 두 다리만을 화보로 싣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사진에다가 설명(캡션) 붙이기를, “손기정 선수의 세계를 制壓한 이 두 다리!--” 스물세 살 朝鮮男兒의 자랑스런 상반신 얼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뜬금없이 손 선수의 아랫도리만 실어놓고는, 엉뚱하게(?) 전세계를 제패한 힘차고 당당한 두 다리 健脚이라니! 마치 그리이스의 조각품에서 상반신 없는 비너스상처럼. 그것은 곧 나라 잃은 亡國民에 대한 피 맺힌 풍자요, 통한의 서글픈 역설이 아니랴! 아마도 수주 선생로서는, 손기정 선수의 앞가슴에 그려진 둥근 “히노마루”(日章旗)가 차마 보기 싫었고, 용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수주는 日警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고, 잡지 <신가정>은 자진폐간으로 이어졌다. 상반신 없는 두 다리만 게재한 것은 不逞思想이 아닌가? 앞가슴의 “히노마루“를 없앤 행위는 일장기에 관한 국기훼손이며 천황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등등-- 그러나 수주는 능청스럽게, 태연히 응수하였다. 천만에, 그런 일은 없다. 그 손기정 선수의 하반신 사진은 베를린 올림픽 때의 전송사진을 가지고 제작한 것이 아니다. 그 화보사진이란,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학당(養正高普)의 학교 마크가 앞가슴에 있는 다른 사진을 가지고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국기훼손이나 천황모욕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라고. 해서 수주는 또 한번 일본경찰의 허를 찌르고 뒷통수를 치면서 풀려나게 되었노라는 이야기----
차제에, “日章旗 抹消事件”의 역사적 實相을 좀더 얘기하기로 합니다.
** 가마우지와 ‘동아일보’
얼마 전 TV에서, 중국 어느 곳의 가마우지 새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아서 시장에 내다팔고 살아가는 낚시꾼(어부) 얘기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 낚시꾼은 가마우지의 모가지에 긴끈을 칭칭 감아놓고, 그것들이 물속으로 잠수해서 고기를 잡게 한다. 가마우지란 놈은 열심히 물고기 사냥을 하기는 하나, 결국은 자기 뱃속으로는 삼킬 수가 도저히 없다. 모가지에 감아놓은 끈 때문에 목구멍이 좁아져서. 그러니까 그저 잔챙이 작은 새끼고기만 겨우 목구멍 속으로 넘어갈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낚시꾼은 가마우지가 잡아낸 그 물고기들을 가로채고 빼앗아서(?) 사람들에게 팔고 이득을 챙기고 큰소리로 뽐내는 것. 대저 일선 신문기자들이 불쌍한(?) 가마우지 같은 신세라면, 그 낚시꾼 어부는 과연 어느 쪽이고 누구일까?
그 당시 신문언론에서 “일장기 말소사건”은 <동아일보>가 처음으로 행한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의 그날(8월 25일)의 보도에 앞서 이미 10여 일 전에, <조선중앙일보>는 8월 13일자 신문에서 “히노마루”를 지워 버리고 보도했었다. 그것은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제패(8월 9일) 이후 불과 4일만의 일이고, 그러므로 뉴스의 속보성에 있어서도 조선중앙일보가 한발 앞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총독부 당국이 모르고 있다가, 비로소 동아일보에 의해 크게 사건화된 셈이다. 그리고 <조선중앙일보>는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1885-1947) 선생이 발행했던 신문으로서 이 사건 때문에 자진휴간하더니, 불과 석 달 후 11월 달에는 폐간의 운명에 처한다. 때에 동아일보의 실무진용을 보면, 잡지 <신동아> 부장 崔承萬(화가), 사회부장 玄鎭健, 사진변조에 직접 참여한 체육담당 기자 李吉用과 미술부 靑田 李象範 및 申樂均 徐永浩 등 제씨이다. 특히 憑虛 현진건(1900-1941) 선생은 익히 알다시피 명단편 <운수 좋은 날>과 <술 勸하는 사회> 및 장편소설 <무영탑>을 쓴 소설가이며, 훗날 청전 화백은 동양 산수화의 대가이다. 그 시절 신문사의 사회부장 직책이란 요즘의 체육부라든지 문화부 등이 따로 없이, 사회부에서 한꺼번에 관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어느 누구의 지시나 모의 혹은 의논이랄 것도 없이, 그들은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제패의 전송사진을 손에 들고 미술부의 청전에게로 간다. 청전 이상범은 한동안 그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러고 나서 이상범 또한 아무 말없이 붓을 들고는 벼루의 먹물을 듬뿍 찍어서, 손기정 선수의 앞가슴에 달려있는 그 “히노마루”(日章旗)를 요리저리 지워버리더란다! 너나 없이 以心傳心---- 이것이 어디선가 내가 읽은 “일장기 말소사건”의 전말이라면 전말이다. 신문사 사주가 명령한 것도, 사장 혹은 편집국장의 지시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태풍의 눈이 되어 해일처럼 퍼져서 민족의 울분을 씻어주며 기쁨과 영광을 노래하게 하고, 신문사는 윤전기를 멈추고(무기정간), 신문사의 기자 식구 13명이 사직하거나 철창에 가고 신문사를 영원히 쫓겨나야만 했었다. (현진건은 1년간 옥고를 치르고, 41년에 병사) 그런 사단이 벌어졌을 때, 사주 仁村 김성수 선생은 보성전문 이사실에서 전화연락을 받고는, ‘히노마루 말소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노여움과 개탄을 마지 않으며 신문사로 왔다. 그리고 당시의 사장 古下 송진우 선생도 ‘서냥개비로 高樓巨閣을 태워버렸다’면서 이길용 기자를 크게 꾸짖고 흥분을 가누지 못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동아일보사사> 券一에서는 이렇게 해설해 놓고 있다. ‘이런 민족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하여 민족의 代辯紙를 자임해 온 본 동아일보가 그냥 무심히 넘길 수는 없었던 것은, 누구의 지시도 아니요 명령도 아닌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오호라, 뭣이라고?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이라니? 왠지, 씁쓰레한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참으로 뻔뻔스럽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려온다. 지난 70년대 엄혹한 유신시절에 “自由言論“을 외친 東亞鬪委 事態(상기도 끝나지 않았음) 때문에 1백 명 넘는 기자 식구들이 신문사 밖으로 쫓겨난에 일에 관해서도, 먼 훗날 그 <社史>에서는 또 기록하기를,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이라고 콧구멍이나 후벼파면서 뒷짐짓고 앉아 노닥거릴 것인가? 근자에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의 별세를 계기로, 무슨 무슨 <연속특집>을 꾸미고,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 전시회>를 갖는 등등 호들갑을 떨어쌌는다. 그런데, 나는 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신문사는 “일장기 말소사건”을 코에다 걸고 그토록 뽐내고 자랑하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잘 챙기고 다 했었는가? 그 시절에 만부득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갔던 옛식구들에게 관해서도말이다. 그 동안에 과연 신문사쪽에서는 그네들의 아픈 고통과 그 충정을 새롭게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또한 역사의 진실대로 투명하게 우러러보고 찬양한 적이 한번쯤이나 있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대의와 소신과 양심을 위해 용기 있게 싸우고 투쟁하다가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쫓겨났던 그네들이, 원상회복되어 다시 신문사에 돌아가거나 그 어떤 훈장(?)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과문한 탓에 그것을 알지 못한다.
흔히 하는 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벌어들이고 있는 셈 아닌가. 우연히 그 TV프로를 보면서, 우리들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생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상념으로 생각을 굴려본다. (2002.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