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신명나는 굿판을 ... |
작자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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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슬픔]-- 작자의 말
찬란하고 신명나는 굿판을 위하여
연극연출가 曉谷 朴龍基 선생의 古稀를 祝手합니다.
‘---- 그리고 도청 앞 금남로에서 다시 만났다. 금남로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 때 그만큼의” 인파가 모여 있었다. 낯익은 인파였다. 1980년 5월의 함성과 1987년 6월의 열기가 되살아난 듯했다. ---- 가슴을 벅차게 했다. 옛 그리움들이 되살아났다. 다시 대동세상을 이루었기 때문일까. 금남로 1~5가, 그리고 그 주변의 광주천과 중앙로까지 꽉 채운 군중들. 그들은 축포를 쏘아올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20여년 전 바로 이곳에서 숨져간 열사들의 동생과 아들과 딸들. 그들은 밤늦게까지 신명나는 굿판을 열었다.’ 이 글은 엊그제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소위 무적함대라 불리는 강호 스페인팀과의 8강전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이 이른바 ”4强神話“를 창조하고 나서, 이를 자축하는 시민 학생들의 흥겨운 光州시내 거리 모습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이태호씨(미술평론가, 전남대 교수)의 觀戰記 한 토막을 어느 신문에서 옮긴 것이다. 잘 아다시피, 그것은 스페인과의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간의 혈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선수 홍명보의 멋진 슛이 골대 그물을 출렁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나 또한 TV를 통해, 바로 20여 년 전의 그 비극의 광장과 통곡의 거리 곳곳이 그처럼 환희와 축복과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는 장엄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콧날이 찡- 하는 감동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슬프고 절망적이었던 시절엔, 이처럼 아름답고 ”찬란한“ 광경과 신명나는 대동(공동체)굿판이 훗날을 기약하리라고, 뉘라서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21세기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불의와 폭력은 반드시 광정돼야 하고, 시대와 역사는 음지 아닌 양지로 발전하는 것이며, 모든 선과 정의는 기필코 승리하는 것 아닌가. ”대~ 한민국, 짝짝 짝짝짝!“ ”오~ 필승 코리아!“ --
연출가 박용기 선생과 나는 십수 년이 넘는 우의와 연극적 인연을 맺어 오고 있다. 박 선생은 철저한 리얼리즘 연극 신봉자로서 원로연극인 이원경 선생님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나 또한 드라마센타아카데미 극작반에서 이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신춘문예의 등단은 물론, 첫 당선작 <철새>의 연출까지 맡아 남산 드라마센타 무대에 올려 해빛을 보게 해주셨으니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은사님이시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박용기 선생은 본인의 졸작 <小作地>를 1979년에, 그 2년 뒤 81년도에는 다시 역사극 <북>을 연출함으로써 나의 작가적 위상을 세워준 분이다. 뿐만 아니라, BBS 불교방송의 “고승열전” 때는 <무학대사> <사명대사> 등등 라디오 드라마로 인연을 맺기도 했다. 그런데 근년에 이르러 이런저런 연유로 해서 오랫동안 연극무대와 떨어져 지냈는데, 요번엔 나와 심재찬씨의 강권(?)에 의해 다시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때마침 금년이 박선생님의 고희의 해라고 하니, 그 기념공연으로서도 더할 수 없이 기쁘고, 생광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음이다. 거듭 박 선생의 祝壽를 기원한다.
이 작품의 제명 ‘찬란한 슬픔’은 김영랑 선생의 명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詩句에서 빌어 온 것이며, 주인공 ‘김의원 가족’의 극적 이야기는 전적인 본인의 虛構로서 작가의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광주5.18의 진실과 역사적 비원을 형상화해 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하였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극단 고향의 여러분과, 극단 전망 대표이자 연출가 심재찬 선생 및 중견배우 이현순씨를 비롯한 젊은 출연자들, 그리고 무대 뒤에서 항상 말없이 수고해 주시는 스탭진과, 공연기획사 “모아”의 여러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깊이 담아 전하는 바이다. 순수 연극예술과 연극인이여, 파이팅!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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