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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의 짧은 글 및 에세이입니다.
'불세출의 혁명아 신돈스님' 머리말
 
역사소설 [신돈, 그 착종의 그림자]-- "책머리에"

불세출의 혁명아 신돈스님

“돈(辛旽)은 성품이 사냥개를 두려워하므로 사냥을 싫어하였으며, 또 음행을 방자히 하여 항상 오계(烏鷄)와 백마를 죽여 써 양도(陽道)를 도우므로, 때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돈은 ‘늙은 여우의 요정’(妖精)이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1450년대 조선왕조의 5대임금 문종 원년에 김종서 정인지 등이 새로 편찬하여 올린 <고려사>(139권) 열전 “반역 6 신돈”편의 끝마무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고려사> 정사에 의하면, 고려 말년의 변조스님 신돈이야말로 천하의 불한당이요 개망나니로서, “괴승” “요승” “사승” “권승” 등등 갖은 표현으로써 그를 왜곡하고 날조 모함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공민왕의 뒤를 이은 32대 우왕을 “신우”(辛禑)라고 하여, 왕씨 성의 적통 아닌 요승 신돈의 자식으로까지 폄하하고 있다. 그것은 곧, 무장 출신의 이성계가 정도전 조준 남은 등 신진 유학자 세력들과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새 왕조를 창업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조 건국의 대의명분과 진정성을 내세우고, 그들의 유교적 통치이념과 반불교적 색채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점에서, 그 연유를 찾아보는 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더구나 <고려사>의 편찬연대가 공민왕 시절서부터는 1백여 년이 지나간 뒤의 일이며, 새 왕조가 들어서고 나서도 59년만의 때 늦은 기록들이 아닌가!
고려왕조의 후반기 2백 년 동안의 나라 형세는 안으로는 국정의 부패타락과, 밖으로는 외세의 간단없는 침략으로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라 안팎의 사회기강과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사회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며, 온나라 백성이 도탄 속을 하릴없이 헤매고 있었다. 차라리 늙고 썩은 왕조가 일찌감치 망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었을까? 1170년(의종 24) 8월에 일어난 군부쿠데타 정중부의 난은 나랏님과 태자가 쫓겨나고 수많은 문신들이 무참한 죽임을 당했으며, 그로부터 시작된 최충헌 형제의 최씨집안 4대에 걸친 60년간의 무신정권, 몽고군 원나라의 침략과 항몽(抗蒙) 30여 년, 왕도 개경을 떠나서 강화도 섬에서의 피난살이 38년간, 25대 충렬왕에서부터 31대 공민왕까지 7대에 걸쳐 원 황실(元 皇室)의 중국여인을 왕비로써 짝짓기 하고, 묘호에 종(宗)이나 조(祖)자도 못붙이는 “사위의 나라‘ 부마국(駙馬國)으로 만족해야 했던 고려왕실의 서글픔 등등. 어디 그뿐인가? 한 해가 멀다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섬나라 일본 왜구들의 발호와 노략질에다가, 또한 공민왕 시절에는 두 번씩이나 홍건적 난리를 지독하게 겪어야만 했다. 그 사이에 나라의 땅덩어리는 처처이 쑥대밭이 되었고, 무고한 양민들은 어육이 되었으며, 경주 황룡사의 큰절과 1차 대장경판이 불타버리는 등 귀중한 문화재와 수많은 재산과 재물들이 약탈당하고, 혹은 회신되고, 혹은 파괴되었다. 그야말로 왕실과 국정은 난마처럼 얽히고, 나라와 백성은 내일조차 기약할 수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이와 같이 백척간두에 선 국운의 때에 이르러, 31대 임금 공민왕의 등장이요, 혁명적인(?) 개혁승려 신돈의 출현이 아닌가 한다. 젊고 영특하며 패기에 찬 임금 공민왕은 “일국경시”(一國更始), ‘나라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왕실과 국정쇄신을 위하여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다. 그 첫 번째가 반원(反元) 개혁정책이었다. 젊은 임금은 원나라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우선 먼저 왕 스스로 변발을 자르고, 오랑캐옷(胡服)을 벗어던지고, 기철 일당과 권겸부자(父子) 등 원나라 황실에 연줄대고 설쳐대는 세도가들부터 일망타진하였다. 그리고 원나라 관청인 이문소(理問所)를 폐지하는 한편 압록강 서쪽의 8첨을 공략하고 쌍성총관부를 쳐서 함경도의 잃어버렸던 땅을 수복하였다. 원나라의 연호도 폐지해 버리고 관제(官制)도 모조리 새롭게 고쳤다. 그 둘째 번으로는 왕권강화와 내정개혁. 누대로 벼슬살이 하면서 왕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수구기득권 세력인 귀족권문세가들을 털어내고, 타락하고 부패한 권승(權僧)들의 집단인 불교계를 정화하고, 광대한 토지소유에 묶여 있는 양민들의 민생과 생존권을 개선하고, 그러고 또한 그들의 신분적 노비상태를 해방시키는 것 등이 그것들이었다.
그러나 개혁정치와 혁명이란 스스로 내적인 여러 가지 제약과, 불가항력적인 요소와 한계가 있기 마련인가? 역사와 시대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올곧은 방향으로만 굴러가지 않은 채 좌절과 실패와, 반동과 퇴영을 거듭할 수도 있는 것. 개혁사상을 지녔던 신돈스님이 젊은 임금과 손잡고 함께 벌이려 했던 혁명적인 개혁정치는 수많은 시련과 장애에 부닥치면서 중단되고 좌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란 곧, 공민왕의 인간적이고 성격적인 약점에다가 신돈이 안고 있는 사회신분적 취약성과 약점이 덧붙여지고, 거기에 수구반동적인 귀족세력의 거대한(?) 반격과, 그러고 또 유학자 출신의 사대부로 대표되는 젊은 신진세력들의 등장과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그들로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조스님 신돈이야말로 시대와 역사의 불행한 희생양이자, 불운의 혁명가이며, 한이 많은 불세출의 개혁승이라고 하겠다.
끝으로, 이 책은 지난 1995년에 BBS불교방송의 일일드라마 “고승열전”의 <변조스님 신돈>을 저본으로 하여 풀어 쓴 것이다. 때에 “고승열전”의 기획 연출을 맡았던 박용기 선생과 해설자 역의 구민 선생, 그리고 출연자 및 방송 제작진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학대사>(상하 2권)와 <사명대사>(상중하 3권)에 이어, 세 번째로 이 역사소설의 출간을 기꺼이 맡아 주신 도서출판 문원북의 사장 문관하님 및 큰 도움을 준 극작가 김영무님 과, 이하 편집진 여러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밝히는 바이다.

2002년 연초 정월 달에

노 경 식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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