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예술 교류회의' 만... |
통일칼럼 |
| |
[칼럼] '남북 문화예술 교류회의' 만들자-- (전교학신문 2002-01-21)
盧炅植 (극작가, 前 남북연극교류위 위원장)
지금 평양에서는 그들 특유의 공연형식인 대집단체조(매스게임)와 예술공연 '아리랑' 작품을 만들기에 한창이라는 소식이다. '아리랑'은 4월 29일부터 6월 29일까지 평양의 릉라도 5.1경기장에서 장장 두달여 동안이나 계속되는 총 출연진 10만명의 그야말로 깜짝 놀랄(?) 대규모 야외공연이란다. 지난 2000년도의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 '10만명 대집단체조'와 공연예술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이 다분히 정치색 짙은 선전선동 공연이었다면 이번 '아리랑'은 우리네 민족정서와 토착성을 앞세우고 사회주의 강성대국의 체제선전과 함께 '외화벌이'에 그 속내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북한당국이 처한 오늘의 세계정세 속에서 '국제사회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리랑'의 기획의도는 꽤 다목적적인 모양이다. 우선 4월달에는 김일성주석의 탄생 90돌(4월 15일)과 조선인민군 창건 70돌(4월 25일)이 들어 있다. 6월에는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2주년 및 전지구인의 축제 서울월드컵 행사가 맞물려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월드컵도 구경하고 내친 김에 "평양의 '아리랑' 구경도 함께 하시라요" 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쯤이야 오늘의 세계화 시장경제 시대에는 그렇게 눈 흘기고 탓할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의 모든 문화예술 활동은 어디까지나 '주체문예리론'에 입각한 예술행위이며,당의 노선과 정책에 충실하게 지도받고 인민대중에게 열성적으로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남쪽의 자유주의적 예술행위가 그것을 흉내내고 무작정 따라가고자 애쓴다거나 혹은 그들 창작행위를 그저 이벤트성 문화행사 정도로 단순하게 홀대하고 폄하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모든 문화예술 활동은 체제와 정치의 종속변수(?)이며,우리네 역시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로부터 결코 자유롭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남북관계가 좀더 진전되지 못함으로써 사회-민간협력과 문화예술 교류에 있어서도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민족분단 반세기만에 어렵게 찾아온 절체절명의 이 소중한 기회를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네 문화예술인이 눈치 안보고 주체적으로 해야 할 몫이 따로 있고,또한 사회단체와 종교계 등등 민간분야 역시 그 진정한 위상과 역할이 반드시 엄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나는 '남북 문화예술 교류회의(交流會議)'의 제도적 장치를 제안한다. 우리 모두 중지를 모아서 교류회의를 상설기구화하고,지난 날 동서독이 십수년 넘게 민간화해와 문화예술 교류를 줄기차게 이어온 것처럼 그 교훈과 실천을 우리도 실행에 옮기도록 하자. 일찍이 통일독일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가 설파했듯이 사람들은 서로가 만나고 보면 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더는 늦지 않게 '남북 문화예술 교류회의'같은 장치를 우리도 만들어서 그야말로 착실히 준비하며 꼼꼼히 따지고,규모있게 연구하며 열심히 노력하자는 생각이다. 할 일은 많을 것이다. 가령 지금 문예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통일문학전집'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남북 문화예술 백서' 등 출판사업을 벌이고,'북한문화 바로알기' 같은 연구사업으로는 문화예술의 장르별 자료수집과 실태조사는 물론 전시회나 워크숍과 심포지엄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한다. 남북한 사이에 '공동예술제'를 개최하고,문화예술인의 인적접촉과 물적교류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도모하며,남북 문화예술의 현실이해 및 기량습득과 노하우를 위해서는 단기간의 연수생 제도를 추진한다.
그리고 '예술교류 사업본부'라도 만들어서 연극예술 관광단 투어를 부정기적으로 실행하고,이번과 같은 대규모 '아리랑' 공연 때에는 유기적으로 관람단을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간단체의 역할과 문화예술인의 교류활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사회민간단체의 활약상과 문화예술의 상호교류 등 순수하고 비정치적인 민간교류의 지속적인 활성화야말로 우리의 햇볕과 포용정책의 확실한 지렛대이자 화해협력과 전쟁 없는 안보정착 및 평화공존의 가장 확고하고도 믿음직스런 담보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