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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노경식에 관한 글들입니다.
 
 
 
근대희곡 제4세대의 대표적인 ... 유민영
 
머리말 : 『노경식희곡집』 6, 7권에 부쳐

근대희곡 제4세대의 대표적인 리얼리스트

유 민 영 (연극사학자, 서울예술대 석좌교수)

우리 희곡사나 연극사를 되돌아보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곧 10년 주기로 주역들이 바뀌고 따라서 역사도 변해왔다는 점이라 하겠다. 가령 희곡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1930년대의 유치진을 시작으로 하여 1940년대의 함세덕 오영진, 1950년대의 차범석 하유상, 그리고 1960년대의 노경식 윤대성 윤조병 이재현 등으로 이어지는 정통극, 이를테면 리얼리즘 희곡의 맥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노경식은 제4세대의 적자(嫡子)로서 우뚝 서는 중진작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노곡(櫓谷) 노경식은 예향 남원의 넉넉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경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전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는 극작가의 길로 접어들어, 시골 고향의 농촌 정서와는 달리 대도시의 뿌리 뽑힌 사람들의 이야기(1965년「철새」)를 들고 연극 일선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어서 단막으로「반달(月出)」과「격랑」을 발표했는데, 데뷔작과 6.25전쟁을 소재로 한「격랑」에 그의 작품성향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역사와 시대상황으로 인한 인간전락과 그들의 감싸안음이며 불행한 역사를 우리 앞에 드러내서 현대인으로 하여금 성찰케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거기에 한두 가지 추가되는 점이 곧 향토사랑이 민족애(民族愛)로 확충된 것과 그의 불교적 인간관이다. 따라서 그의 방대한 양의 작품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야기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은 지면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대강만은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주제가 중심에서 밀려나 초라하게 겨우 겨우 살아가는 민초들에 대한 연민이다. 데뷔작「철새」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작품군(群)이 바로 그런 계열인 바, 여기에 그의 따뜻한 인간애가 듬뿍 넘쳐난다. 그가 한국연극계의 ‘집사’(執事)로서 상찬과 비난을 함께 받고 있는 것 이면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고할 수 있겠는데, 권력층의 무능과 부패로 인한 민초들의 역경과 고초를 묘사한 작품 군이다. 그의 작품들 중 대종을 이루고 있는 사극의 시대배경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근현대까지 광범위하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설화를 배경으로 서정적 작품을 썼고, 조선시대부터 정치권력의 무능에 포커스를 맞추더니 근대이후로는 민초들의 저항을 작품기조로 삼기 시작했다. 그런 기조는 현대의 동족상잔과 군사독재 비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따금 그는 사석에서 자신을 ‘중도좌파’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곤 한다. 게다가 그가 남북연극의 교류(‘서울평양연극제’)까지 추진한 바 있어서 통일지상주의로 비칠 수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 시대의 작가로서 민족의 화해와 공동선을 추구해보고 싶은 심정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세 번째로는 고승들의 인생과 심원한 불교의 힘에 따른 국난극복의 과정을 리얼하게 묘파한 작품 군이다. 여기서는 장년기에 들어선 그의 인생관조가 고승들이 던지는 화두에 언듯언듯 나타난다. 그도 조금씩 늙어감을 작품 속에 은연중 비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그의 장기(長技)라 할 애향심과 토속주의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 같다.「정읍사」로 대표되는 그의 로컬리즘은 짙은 향토애와 함께 남도의 서정이 묻어나는 구수한 방언이 질펀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돋보이는 부분은 리얼리즘이라는 일관된 문학사조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솔직히 대부분의 많은 작가들은 시대가 바뀌고 감각이 변하면 그에 편승해서 작품기조를 칠면조처럼 바꾸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노경식은 우직할 정도로 자신이 신봉해 온 리얼리즘을 금과옥조처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도 뮤지컬 드라마 「징게맹개 너른들」에서 외도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작품도 자세히 살펴보면 묘사방식은 지극히 사실적임을 알 수가 있다. 그가 우리 희곡계의 제4세대의 대표주자로서 군림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고집스런 작가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년기에 들어선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수작을 내놓아 우리를 놀라게 할지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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