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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눈으로 본 노경식에 관한 글들입니다.
 
 
 
깊은 산 골짜기 같은 '櫓谷'을 ... 윤대성
 
뒷풀이글 1- 『노경식희곡집』완간을 축하하며

깊은 산 골짜기 같은 ‘櫓谷’을 말한다

윤 대 성 (극작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우리 친구들은 노경식을 노곡(櫓谷)이라고 부른다. 방패 櫓 자에 골자기 谷. 이게
무얼 뜻하는지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본인도 굳이 무슨 뜻인지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오래된 산 골짜기’(老谷) 정도의 뜻으로 알고 있을 뿐 --
사실 그런 뜻으로 자호(自號) 하였는지도 모른다. 늙었다는 글자가 싫었을 뿐이지. ‘오래된 산 골짜기’ 그 안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마른 낙엽도 쌓이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겹겹이 길을 막고 죽은 동물의 뼈다귀도 흩어져 있고 -- 그런데 쌓이고 쌓인 그 낙엽 아래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그 개울물 소리도 듣는다.
극작가 노곡의 활동이나 작품세계를 섭렵해 보면 그 안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이름 없는 민중들의 애환을 다룬 데뷔작 <철새>를 비롯해서 <오돌또기> <만인의총> <징게맹개 너른들>같이 민초들의 역경과 고초를 묘사한 작품들. 그리고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역사적 인물을 묘사한 작품으로 <징비록> <불타는 여울> <번제의 시간> <두 영웅> 등이 있고,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가와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들 <탑> <하늘보고 활쏘기> <알> <정읍사> 등도 이 있다. 그는 과거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고 현대의 우리나라의 분단 문제에도 냉철한 시각을 보여 <하늘만큼 먼 나라> <타인의 하늘> <북녘으로 부는 바람> 등의 문제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 분야는 희곡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때로는 TV 드라마 「전원일기」 <잃어버린 이름>(3부작) <밭(田)>(3부작) 등과 불교방송 BBS의 「고승열전」에서 <신돈> <무학대사> <사명대사> 등 라디오드라마에도 손을 댔다. 그는 한때 어느 출판사 편집주간(국장)으로 많은 문인들을 거느리고 있던 문학판의 큰손(?)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가 활동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발이 넓고 인맥이 다양하다. 그의 약력을 일별하면 우리 노곡이 얼마나 활동적인 문인인지 짐작할 수 있다.

노곡과 나는 1962년 드라마센타가 설립되고 「연극아카데미」라는 학교(현 서울예술대학 전신)가 생겨 연극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서로 알게 된 사이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50년의 옛일. 노곡은 경희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나는 연세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둘 다 무엇에 미쳤는지 연극예술을 함께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 여석기 교수가 지도한 「한국극작워크숍」에서도 수년간 계속 같이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극작가로, 친구로 50년의 세월 반세기를 함께 보냈다. 그와 함께한 술자리의 술을 합하면 한라산 백록담을 채울만 한 양이 될 것이다. 그는 내가 아무리 취해서 상처를 주는 칼날 같은 헛소리를 해도 결코 한 번도 나한테 화를 낸 적이 없다. 친구들은 내게 ‘陶山’이라는 호를 지어줬는데 실제의 뜻은 칼도 자 ’刀山’이다. 내 성질이 칼 같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내가 주석에서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그는 허허 웃고 “됐어 그만해!“ 할 뿐이다.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울 만도 한데 한 번도 말다툼이라도 해 본적이 없다. 그만큼 도가 튼 인물이어서 그런지 심성이 하해처럼 넓어서 그런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우리는 70대의 노인이 되어 있다. 한동안 서로 안 보이면 그리워지고 걱정이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우리가 노경식을 노곡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뜻은 이 친구가 술을 너무나 좋아해서 오래도록 술 골짜기에 빠져 있어도 다음날이면 거뜬히 헤엄치고 나와서 한잔 더 달라고 잔을 내미는 그 든든하고 미더운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불의에 대해서는 무섭게 화를 내지만 결코 뒤끝이 없는 큰 키만큼 마음이 허허로운 그 성격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곡이 있는 술자리는 늘 화제가 풍성하고 재미있다. 이제까지는 좋은 점만 말했지만 노곡의 나쁜 뜻도 하나 있다. 깊은 산 골짜기라 음침(?)하다는 점이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가까운 친구들 우리도 모르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한동안은 잘 알 수도 없다. 그의 약력을 보면 알 것이다. 남북문화교류를 위해 중국 베이징과 금강산을 부지런히 다니며 북한 문화인사들을 만나 「서울평양연극제」를 추진하겠노라고 노력하지 않나, 또는 중국 연길을 방문하여 「한국연극협회 연변지부」를 창설하는 등 안하는 짓이 없다. 우리와 술을 마시고 연극을 보는 그 틈틈이 전국 방방 곳곳을 누비며 자료를 준비해서 새 작품을 써서 지방에서도 많은 작품을 발표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지 친구인 나도 놀래곤 한다. 그의 역사적인 인물을 소재로 해서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그가 또 얼마나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였는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 정도로 그는 작가에 앞서 역사인식이 투철하다. 그리고 부지런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늘어져서 술이나 마시고 TV나 보고 있는 늙은이가 아니다. 요즘엔 스마트폰까지 들고 다니며 소셜미디어(SNS)에 심취, 페이스북과 트위터까지 해서 또 한번 친구들을 놀라게 한다. ----

『노경식희곡집』(전7권)의 완간을 거듭 축하해 마지않으며, 앞으로 그의 노년의 인생이 푹 담긴 勞作이 나와서 우리를 또 놀라게 할 그날을 기대해본다.

2012년 1월 친구 陶山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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